<밤을 걷는 밤>의 대미는 소제목에 있다. 소제목 하나하나가 가사의 한 구절처럼 느껴진다.
마음과 기억의 시차를 맞추는 시간 느리게 걸어야만 보이는 풍경들 길은 언제나 삶을 가로지른다. 빛과 물과 가을이 쉼 없이 노래하는 밤 시시한 이야기가 그리운 밤에
‘밤’ ‘길’ ‘산책’이라는 세 요소에 지역색을 더해 하나하나에 딱 맞는 이름을 붙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지하철에서 몇몇의 제목은 마스크 속에서 중얼거리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어휘가 적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는 요즘, 저 제목들처럼 일상어를 잘 조합하는 능력을 기르고 싶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은 몇 번씩 속으로 읽곤 했다. 간결하고 단정한 문체였다. 텅 빈 속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미사여구를 붙이려는 나의 시도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역시 “Simple is the best!”였다.
밤의 거리는 참 묘하다. 청각과 후각을 예민하게 깨우는 대신 시각은 절반쯤 잠재우는 시간. -<비오는 밤, 성곽길을 걷게 된다면> 중에서
만약 내가 이 문구를 썼다면 귀를 ‘쫑긋’ 세운다든지, 커피향이 ‘코 끝에 오래’ 머문다든지 하는 문구를 써서 이 문장을 두 배는 길게 썼을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을 어떻게 만들었을지 나는 꽤 오래 생각했다. 사실 어문학을 전공하면 ‘언어의 경제성’을 먼저 배운다. 문장에서 중복되는 표현, 부차적 표현을 덜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글을 오래 쓸수록 기본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자꾸 요령만 피우는 기분이다. <밤을 걷는 밤>은 내게 초심을 일깨워준 책이다.
아경을 완성하는 이 예쁜 불빛들은 늦은 시각에도 누군가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또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자의 치열함이 빛을 내는 거리> 중에서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코로나로 10시면 식당이나 카페에서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시간에 회사를 나서면, 집으로 가는 동안 고요해진 길거리를 목격한다. 아, 물론 술에 취한 이들의 고함은 있다. 하지만 모두가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때와는 다르다. 이 사람들은 집에 있을까? 회사에도 있다. 그 시간에 회사를 나온 나도 그랬지만, 화장실에 가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혼자인 적은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면 아직 꺼지지 않은 사무실이 많았다. 어째 사라진 저녁이 회사로 옮겨온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식당과 카페는 물론 사무실 불도 좀 꺼졌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니까 말이다. 디자인적으로 봤을 때는 일러스트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내용이 감성적이니 귀여운 일러스트가 너무 도드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도의 간결한 디자인과 지명을 나타내는 서체도 부조화하다고 생각했다. 책이 얇아져도 사진과 글만 있는 게 어땠을까 싶다. 디자인도 글만큼 덜어내기가 되었으면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