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저자가 쓴 '카피'에 관한 책이다. <누구나 카피라이터>를 산 이유는 간단하다. 책에 들어가는 광고 문구를 나도 잘 써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막상 완독하는 건 아주 오래 걸렸다. 이 책에서 건네는 조언을 애써 무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조언대로 해도 나는 그 자리에 있을까 두려웠다.
저자 특유의 위트가 돋보이는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요즘 나는 잘 쓴 글을 보면 볼수록 두렵다. 내 한계와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 책 안에 있는 좋은 광고문구들을 볼 때마다 가슴을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넌 절대 쓸 수 없는 문장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 정말 억지로 억지로 나를 책 앞에 끌고가야 했으니 말이다. 열여덟 개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단 한 줄의 카피도 쉽게 쓰인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쉽게 가고 싶어 했는지도 깨달았다. 그래서 회사 선배들이 권해준 실력 향상 방법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아이디어를 꼭 내가 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책을 담당하게 되면 욕심이 생기고, 내가 민 제목이 되길 원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있다. 표지 작업 중에도 제목은 바뀐다.
실제로 이번 달 회사 선배가 진행하는 책 제목은 두 차례 회의를 통해 결정됐다. 그런데 디자인 작업 중에, 디자이너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자신이 이미 결정된 의견을 흐트러뜨리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때 누군가 "좋은 책을 만들자고 이야기한 건데, 기분 상할 일이 있나"라고 말했다.
그런데 과거에 같은 일을 맞닥뜨린 나는 자존심을 다쳤다. 내 의견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자책만 했다. 왜 혼자 다른 목표를 품었을까. 더 좋은 책 제목을 선정하는 게 먼저인데, 회사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앞세웠다. 이런 자세를 일관하면 좋은 의견을 다 버리겠구나 생각했다. 조언을 잘 흡수하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영감은 알아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전체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카피를 만드는 게 아니라 찾는 것이란 이야기도, 한 단어 한 단어 사전으로 찾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그렇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와 맞는 적확한 정보를 정말 미친 듯이 찾아헤매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상품을 만들든 시장 조사를 한다. 그리고 이 상품을 팔기 위해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상품들은 무엇을 강조했는지 살펴본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장이 더 많은 매대에 놓였는지 살펴봐야 한다. 재미와 새로움을 가미하는 건 그 이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훨씬 많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저자의 전작을 읽으라는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살짝 불편하게 느껴졌다. 단권으로 판매하는 책이니만큼, 전작을 읽어야 좋다는 조언은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