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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진 Mar 22. 2024

골판지가 만든 세계

에바 조스팽

프랑스 현대 작가 에바 조스팽(Eva Jospin)은 골판지로 대형 설치 작품을 만든다. 2023년 디올 패션쇼 무대 배경으로 조스팽의 숲이 설치되었고, 2021년에 파리 7구 보 파사주에 22미터 골판지 숲이 설치되었다. 2016년 루브르 박물관 야외에는 철제 파빌리온 안에 조스팽의 숲 작품이 설치되었다.   

   

2023년 프리즈 서울에서 ‘산책로’를 뜻하는 ‘프롬나드(Promenade(s))’ 프로젝트를 선보인 조스팽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소재로 경이로운 세계를 만든다. 골판지를 사용한 설치작, 카르몽텔(Carmontelle)을 표현한 일련의 창작물과 고부조, 그림, 자수를 만나볼 수 있었다.



에바 조스팽, Chef d’Oeuvre #5 Crayère, 2022, 프리스 서울 전시 전경 Ⓒ정유진


조스팽은 1975년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 에콜 국립 고등 예술학교와 런던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2015년 아카데미 데 보자르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2017년 로마의 빌라 메디치에 입주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팔레 드 도쿄와 2018년 페라라의 팔라초 데이 디아만티에서 열린 전시를 비롯해 국제적으로 전시를 열고 있다.     


조스팽은 예술학교 입학 전 건축 학교에서 1년을 보냈다. 건축 학교에서 건축 샘플을 만들 때 골판지를 사용했다. 예술학교 졸업 후 사용할 재료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금속, 섬유 유리 등 여러 가지를 찾아봤기만 재료 모으기는 돈 드는 일이었다. 전에 사용했던 골판지를 떠올렸다. 


조스팽은 골판지를 자유롭게 사용하여 공간에서 형태를 그리고 지운다. 손으로 풍경을 그린 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전체적인 선을 작업한다. 구해 온 골판지를 쌓아 붙이고 자르고 다시 쌓으며 여러 형태를 만든다. 여러 층으로 나뉜 골판지를 정밀하게 자른다. 자르며 또다시 골판지를 쌓고 접착제로 붙인다. 형태를 잡기 위해 표면의 부분을 일부 제거하여 움푹 들어가게 하거나 구멍을 파고 안을 비우며 사포질한다. 조각이 완성된 후에는 금속으로 악센트를 주거나 조명을 더 하기도 한다.  



에바 조스팽, Chef d’Oeuvre #5 Crayère의 일부분 Ⓒ정유진

조스팽의 작품은 건축, 조각, 자연, 인간의 상상력 사이에 있는 교차점이다. 고대 로마, 종교 사원, 트롱프뢰유, 건축물 등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낸 골판지 풍경화이다. 조스팽은 특히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 1868-1940)의 그림과 로마에 콜론나 궁전(Palazzo Colonna)에 자수실(embroidery room) 자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자수의 뒷배경과 색상을 사용하여 작품을 회화처럼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에바 조스팽, Chef d’Oeuvre #5 Crayère의 일부분 Ⓒ정유진


조스팽의 작품은 골판지를 정교하게 자르고 붙여 밀도감과 입체감이 있다. 미지의 숲, 바위, 동굴, 사원이 신화나 동화 속 장면처럼 펼쳐진다. 상상과 사색의 영역으로 이끈다. 실제 숲을 그대로 재현한 듯 보이지만, 모방이 아닌 자연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상상력으로 구현된다. 완성작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퇴적암에서 발견되는 주름진 지층을 떠오르게 한다. 자연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골판지로 완성된 작품은 물성과 형상의 결합을 선보인다. 가장 단순한 소재가 완벽한 입체적 형태를 이룬다.   

   

조스팽의 설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평소 이렇게 골판지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나? 생각이 든다. 매일 오는 상자를 버리기 바쁘다. 쉽게 구할 수 있고 버려지는 골판지가 시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으로 눈 앞에 펼쳐진다. 조스팽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나 생각을 제시하고 싶지 않고, 관객 각자가 해석해 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가볍고 견고하며 동시에 환경친화적이라는 재료가 지닌 물성을 가지고, 조스팽은 예술과 자연 사이에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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