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엑(Ron Mueck)
1958년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현재 영국에서 활동 중인 조각가 론 뮤엑은 극사실주의(highperrealism) 조각을 작업한다. 그는 인체, 개, 머리뼈 등 보편적이며 익숙한 주제를 선택해 실제보다 크거나 작은 비현실적인 크기로 조각을 완성한다.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조각을 내놓으며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뮤엑은 20대에 영화 및 방송계에서 마네킹 제작과 특수 효과 기술자로 일했다. 작가로 시작은 서른여덟이었던 1996년 예술가 폴라 레고(Paula Rego)의 의뢰를 받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 전시한 작품 <피노키오>였다. 헤이워드에서 뮤엑의 작품을 관심 있게 본 찰스 사치가 그에게 조각 세 점을 의뢰한다. 이후 1997년 런던 로열 아카데미에서 뮤엑의 아버지가 실제로 누워 있는 듯 똑같이 재현한 <죽은 아버지Dead Dad>(1996-1997)를 선보이며 작가로서 크게 주목받는다. 2000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지원 작가로 선정되어 2년간 <엄마와 아이 Mother and child>, <배에 탄 남자 Man in a Boat>(2002), <임산부 Pregnant Woman>를 완성한다. 이 세 작품은 현재까지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2003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다.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5미터가 넘는 거대한 <소년 Boy>(1999)을 선보였다. 이번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관에서는 세 번째 개인전으로 기념비적 설치 작품 <Mass>가 전시되었다.
Ron Mueck, Mass, 2017, mixed media, variable dimensions, 까르띠에 미술관 2층에서 바라 본 전시장, ©Photo정유진
미술관 입구 바깥쪽 왼편으로 머리뼈 모양의 2톤에 달하는 주철 <Dead Weight>(2021)가 보인다. 제작하던 과정과 원재료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왼쪽 전시실로 들어서면 거대한 머리뼈 더미가 놓여있다. 이 더미의 제목은 '군중', '더미' 또는 종교 의례인 '미사'를 하는 <Mass>(2017)이다. <Mass>는 2017년 빅토리아 국립미술관(호주 멜버른)의 의뢰로 제작되어 지금까지 뮤엑이 제작한 작품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뮤엑은 각 머리뼈를 수작업으로 유리섬유(fiberglass)와 레진(resin)으로 만들고 흰 페인트를 칠했다. 머리뼈의 높이는 1.5미터이며, 무게는 100여 개 모두 합치면 약 5톤에 달한다. <Mass>는 뮤엑이 이전에 인체 하나만을 선보였던 작업과 차별화된다.
머리뼈는 복잡한 오브제이자 관람객이 즉시 알아볼 수 있는 강력한 아이콘이다. 머리뼈는 사진이나 광고, 어딘가에서 많이 본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거부감이 일면서도 시선이 가고 관심이 간다. <Mass>는 머리뼈가 하나가 아닌 더미로 펼쳐지며 '메멘토 모리'를 상기시킨다.
머리뼈는 죽음의 비유적 사물로 대중문화뿐 아니라 미술사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얀 호샤르트(Jan Gossaert)의 <머리뼈가 있는 정물>(1517), 한스 홀바인의 <프랑스 대사들>(1533), 하르멘 스텐위이크의 <인생의 헛됨에 대한 알레고리>(1640), 반 고흐의 <담배를 문 머리뼈>, 피카소의 <머리뼈가 있는 정물화>(1908)처럼 많은 작품에서 머리뼈는 죽음을 떠올리며 삶을 성찰하는 오브제이다. 현대미술에 와서는 데미안 허스트가 머리뼈에 다이아몬드 8천여 개를 붙인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선보이며 시선을 끌었다.
죽음을 상징하는 머리뼈를 보고 반대편 전시실로 오면, 탄생을 의미하는 신생아가 누워있다. 가로 5미터 크기에 신생아의 몸은 이제 막 태어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떨어지지 않는 탯줄, 꽉 쥐고 있는 두 손, 겨우 뜬 한쪽 눈, 몸 여기저기에 묻은 피 등 몸의 세밀한 부분까지 크고 생생하게 보인다.
몸 이곳저곳을 계속 보고 있으면 긴장감과 거부감이 든다. 생명 탄생의 순간은 기적, 감동의 순간이라는 문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산모가 힘들게 아이 낳는 영화의 한 장면, 막 태어난 아이, 새 생명, 그 순간을 맞이하는 시간은 뭉클하다. 이런 감동적인 느낌 대신 긴장감, 징그럽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 꾹 다문 입술, 미간 주름, 목과 발목, 발뒤꿈치 살이 접히는 사이, 머리카락 사이사이, 발톱에 낀 피, 이게 나란 말인가? 내가 태어날 때 이렇게 끔찍한 모습이었나? 인간이 이렇게 징그럽고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태어났나? 감동적인 삶의 첫 페이지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깨진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뮤엑의 인물 조각 주제는 중요한 순간에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벌거벗고 있다. 인체 조각은 극사실적인 모습과 비현실적인 크기로 다가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믿기 힘들 정도로 실제보다 더 정밀하게 조각된 모습이 놀라움과 강렬함을 전달한다. 그 강렬함은 현실을 직시하며 여러 가지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는 얼굴의 점이나 기미를 가리기 위해 화장한다. 뱃살을 감추기 위해 옷 디자인과 색을 고려하고, 키 커 보이기 위해 키 높이 신발을 신는다. 미디어를 시청하며 현실을 잠시 잊거나 괴로운 내면과 마주하기를 피한다. 물리적 현실이든, 내적 현실이든, 하루에 온전히 내 현실과 마주하는 시간은 몇 분이나 될까?
뮤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실제와 똑같아 보이는 조각을 보여주며 진실을 묻는다. 뮤엑은 '이 모습이 너야' '이 모습이 우리야'라고 미세한 피부에 주름을 확대해 보여준다. 삶의 순간을 포착한 그 강렬한 사실주의로 현실과 마주하게 만든다.
미술관 지하로 내려가면 미니어처처럼 작은 <이 작은 돼지 This Little Piggy>(2023), <아기 Baby>(2000)와 높이 3미터에 달하는 개 3마리 <무제 Untitle>(세 마리 개Three dogs, 2003)가 전시되어 있다.
뮤엑은 <이 작은 돼지>에서 사실적인 디테일과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네 남자가 힘으로 돼지를 제압하고 있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존 버거의 소설『그들의 노동에』(Into Their Labours)의 1부[끈질긴 땅](Pig Earth)에 나오는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 소설에서 돼지 잡는 일은 작은 산골 마을 공동체가 중요하게 여기던 일이었다.
또 다른 작은 조각은 갓 태어난 남자아이 <아기 Baby>(2000)이다. 뮤엑은 의학 교과서를 보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 아기는 몸을 쭉 뻗은 자세로 출산 직후 신생아 키를 잴 때 모습이다. <아기>는 25cm로 작지만, 머리카락이나 배꼽 다리에 접힌 살 주름 등 실제처럼 표현해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아기를 벽에 걸어놓아 마치 종교적 아이콘처럼 제시한다. 그러나 아기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발적인 눈빛과 마주하게 된다.
지하 전시실 공간을 꽉 채우는 거대한 세 마리 개는 이번 까르띠에 미술관 개인전을 준비할 당시 뮤엑이 이미 작업하고 있던 조각이었다. 10년간 영국 남쪽 와이트섬의 작업실에서 완성했다. 세 마리 개는 눈빛과 표정 얼굴 근육에서 친근함보다 긴장, 공포, 위협감이 느껴진다. 개들은 애완견이 아닌 무언가를 보호하고 있는 경비견이나 들개 같다. 이 작품에서 뮤엑은 생생한 인체 묘사를 넘어서 형태와 구도, 움직임에 집중하며 새로운 작품을 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새로운 재료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고 있다.
뮤엑은 지난 25년 남짓 되는 작업기간 동안 48점을 제작했다. 극사실주의 조각을 아주 작거나 거대한 크기로 만들어 작품 세계를 구현한다. 그는 다양한 모습을 묘사하며 삶과 죽음, 삶의 한순간을 포착하여 삶 전체를 보여준다. 작품마다 조각의 감정이 드러나는 살아있는 생생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모습에 더해진 비현실적인 크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시선을 집중시키고 몰입감을 끌어낸다.
론 뮤엑의 instagram
https://www.instagram.com/ronmueck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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