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든어제 Jul 04. 2021

양수가 터졌다.

2021년 6월 1일 새벽,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5월 31일에서 6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

 갑자기 작은 방울이 터지듯 '퐁' 하고 속옷이 젖었다. 임신 39주 0일이 되는 날이었고, 앉았다 일어날 때면 온몸이 기우뚱하는 만삭이었다. 임신 후기 요실금인가 하여 속옷을 갈아입으며 팬티라이너를 붙여두었다.


6월 1일 00시 15분

 아까보다 조금 큰 방울이 터진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에 가서 확인해보니 팬티라이너 바깥까지 속옷이 젖어있었다. 이전보다 많은 양에 혹시나 냄새를 맡아보았다. 소변은 아니었다. 이상했다. 양막 파수, 흔히 말하는 양수가 터진 상황이라면 다리 사이로 뜨끈한 물이 줄줄 흐른다는데 양수가 '터지는'게 아니라 찔끔 '새는' 정도의 양막 파수도 가능한가? 산부인과 분만실에 전화를 걸었다. 분만실 간호사 분은 속옷이 다 젖었는지를 물었다. 팬티라이너를 붙여두어 정확한 양은 모르지만 그 이상으로 뜨끈한 물이 나왔다고 대답했다. 수화기 너머로 일단 분만실에 와서 양수 확인 검사를 하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6월 1일 00시 30분

 전화 통화를 마치고 이번에는 새로 갈아입은 속옷에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붙였다. 친정집에서 아이를 낳고 연말까지 주말 부부로 지내기로 한 터였다. 월요일이라 늦은 퇴근을 하고 잠든 남편에게는 양수가 맞는지 확인하고 나서 전화하는 게 좋을 듯했다. 엄마, 아빠가 주무시는 방문을 두드렸다.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아빠는 두고 엄마의 경차로 잠시 우리 둘이 병원에 다녀오자 말하려 했다. '똑똑'. 그 순간 방울이 아닌 커다란 물풍선이 터지듯 순식간에 오버나이트를 흠뻑 적실 양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내가 해야 하는 말도 바뀌었다.

 "엄마, 나 양수 터졌어."


6월 1일 01시

 아빠는 평소보다 조금 급하게 차를 몰았다. 밤늦은 시간 산부인과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미리 챙겨두었던 입원 가방을 들고 분만실로 향했다. 통증은 전혀 없었다. 다만 아빠 차 뒷자리 시트가 분무기로 물을 한 번 뿌린 듯 젖어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는 다리 사이로 줄줄 양수가 흘렀다.

 코로나로 인하여 분만실에는 보호자 1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당연히 남편이 들어갈 거란 생각으로 남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긴 뒤 나 혼자 병원 간이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했다. 엄마, 아빠는 밖에서 입원 가방을 들고 기다렸다.

 양수 검사는 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분만실이 준비되었고 나는 산모복으로 갈아입었다. 계속 흘러나오는 양수 때문에 분만실 침대에 베갯잇보다 넓은 패드 두 장을 깔고 누웠다. 나는 분만실에 누워 입원 동의서부터 제대혈 기증, 회음부 열상 주사 등 여러 장의 서류에 동의 서명을 했다. 남편은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진통이 시작되었다.


6월 1일 01시 30분

 새벽 4시에 촉진제를 투여하기로 했다.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도착하는 시간을 확인해달라고 했다. 양수가 터진 순간에도 동요되지 않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전화, 카카오톡, 보이스톡, 텔레그램 등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남편에게 연락했지만 무섭도록 잠귀가 밝은 사람이 이상하게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일단 4시까지 남편을 기다리기로 하고 엄마, 아빠는 귀가했다. 혹시나 남편이 4시까지 연락이 닿지 않으면 엄마가 분만실에 들어오기로 했다. 촉진제를 넣어도 몇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부천에 있는 남편이 천안까지 내려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KTX 첫차 시간을 확인해 남편에게 보내 두었다.


6월 1일 02시

 진통 간격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통주사를 맞지 않을 계획이었다. 최근에 출산한 지인 2명이 이야기해주기로 무통주사를 맞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출산이 어려웠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은 결국 흡입분만을 진행했다며 내게 무통주사는 한 번 고민을 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 후 진통 중 할 수 있는 호흡법과 간단한 동작 등을 남편과 익혀두었고 무통 없이 진행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고 진통은 5분에서 4분 간격으로 짧아졌다. 양수가 터져서 일어나서 할 수 있는 진통 완화 동작들은 모두 불가능했다. 진통이 올 때마다 침대 위에 팔꿈치와 무릎을 댄 테이블 자세로 허리와 골반을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는 게 최선이었다. 분만실 간호사 분께 아까 미뤄두었던 무통주사 동의서를 부탁드렸다. 새벽 4시 촉진제를 넣을 때 무통주사도 맞기로 했다.


6월 1일 04시

 남편은 아직 연락이 없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