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를 안고 사랑해, 사랑해 말한다.
"아가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지? 너는 모를거야, 나도 몰랐거든."
이젠 10kg을 훌쩍 넘긴 아이를 부둥켜 안고 사랑한다 말하면, 아이는 두 팔 가득 내 목을 끌어 안는다. 가끔은 내가 아이에게 느끼는 이 큰 사랑에 내가 벅차다. 내가 이렇게 큰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엄마가 되어 이 아이를 사랑하고 양육한다는 것이 놀랍다. 때론 내가 아이에게 품는 사랑에 자아도취될까 경계해야 한다.
오늘도 여느 날과 같이 아이를 끌어안고 그 작은 등을 쓸었다. 매일 먹이고 재우고 보듬어 키운 아이가 그 작고 토실토실한 두 손을 뻗어 내 뺨을 감쌌다. 아이의 손이 뺨에 닿는 순간 '울컥'. 오늘의 고단함을 위로받았다.
오늘 아침 나는 새벽 내 고열과 싸운 아이를 두고 출근을 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밤 9시가 훌쩍 넘어 돌아왔다. 오늘따라 주어지는 일은 버거웠고, 복잡한 마음에 저녁도 거르고 일을 마무리했다. 눈에 밟히는 아이를 생각하면 조금은 서러웠고 배는 울렁거렸다.
속이 찢어지게 미안한 마음과 왜 이렇게 일이 복잡할 때 아이까지 아플까 하는 원망을 함께 품은 채 집에 돌아왔다. 문을 열며 들리는 아이의 작은 재잘거림. 내가 도착하는 소리에 분명 아빠와 문 뒤로 숨어 들어가 킥킥대고 있을 얼굴이 절로 떠올랐다. "우리 아가 어디있지?"
엄마, 야이따(왔다)!
다 큰 어른이 아픈 아이에게 품은 서운함은 치사하고 옹졸하다. 내가 바쁠 때 아이가 아프다는 생각은 지독히고 이기적이고 못된 마음의 발로이다. 아이는 자기가 아플 때 엄마가 바쁘다는 이유로 옆을 비워 얼마나 서럽고 속상했을까. 그럼에도 아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반겨 끌어 안아준다.
사랑을 쏟아부어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내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크고 귀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엄마에게 주는 사랑은 그 사랑의 색깔이 다를 뿐 결코 작거나 부족하지 않다. 내 인생에는 아이를 모르는 30년이 있지만 아이의 생에는 내가 없는 날이 없었다. 아이는 유려한 말로 포장하지 않을 뿐 손바닥의 온기와 내 어깨에 파묻는 코 끝으로 말하고 있었다. "엄마, 사랑해. 사랑해. 내가 엄마를 많이 사랑해."
아이가 내게 부어주는 사랑이 오늘 나를 일으켰다. 분명 회사에서 온 힘을 쏟아 붓고 너덜너덜한 채로 돌아왔는데, "엄마아-" 부르며 두 팔과 두 다리로 내게 매달리는 아이가 전혀 무겁지 않다. 왼팔로 아이를 안아 들고, 오른손으로는 아이의 이마를 짚고 목과 겨드랑이를 오가며 체온을 확인한다. 마치 오늘 낮에 내게 일어난 일들은 까맣게 잊은 듯이, 내가 느낀 열패감은 먼지 털 듯 털어낸 것처럼 높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가아-, 엄마 얼마나 보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