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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어제 Mar 14. 2022

9개월 아기와 자가격리 84시간

 앞으로 남은 시간 약 100시간

 지난 3월 10일 새벽 6시 30분,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기가 이상해!"

 용수철처럼 매트리스에서 튕겨 나와 아이를 안아 들었다. 불덩이였다. 벌겋게 상기된 아이의 얼굴에 급하게 아이의 옷을 벗겼다. 체온을 재니 처음 보는 숫자가 빨갛게 변한 체온계 화면 위로 새겨진다. 40도.


 처음이었다. 폐구균 접종을 하는 날이면 접종열이 오르긴 했지만 이렇게 고열이 나는 일은 말 그대로 아이가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점점 가파지는 아이의 숨소리에 일단 응급실을 찾았다. 해열제를 먹이고 기다리기에는 축 처진 아이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고열 증상이 있는 경우, 혹시나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가까운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40도가 넘어가는 고열의 아기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지. 다행히 최근에는 응급실에서도 격리 병실을 운영하고 있어 격리 병실에서 먼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마침 당직 중인 소아과 선생님이 계시다는 이야기에 곧바로 아이를 안아 들었다.


 응급실에 도착해 아이를 안고 접수를 했다. 간단하게 증상을 설명하고 격리 병실에서 대기를 하니 곧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일단은 열이 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니 해열제를 먹이고 지켜보자 하시며, 만일을 대비해 PCR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영문 모르는 아이의 얼굴을 부여잡고 PCR 검사를 받았다. 고열에 지쳐서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하는 아이를 안고 '미안해, 미안해' 끊임없이 미안했다.


 낮 12시를 조금 넘긴 시간, 병원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검사하신 COVID-19 PCR 검사 결과 양성입니다.' 그리고 나와 아이의 격리생활이 시작되었다. 9개월 된 아이가 혼자 격리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나는 감염될 각오로 아이와 방에 들어섰다.


 급하게 남편의 짐을 거실로 옮기고 거실에 있던 아이의 장난감과 책, 기저귀를 방 안으로 옮겼다. 남편은 방 밖에서 우리의 손발이 되어주기로 했다. 다행히 아이가 기존에 다니던 소아과에서 비대면 진료와 처방이 가능해 약을 처방받았다. 남편은 약국에서 약을 받아왔고, 수시로 나의 전화와 카톡에 따라 움직였다. 아이의 분유를 타 문 앞에 두었고, 내 끼니를 챙겼고, 방에서 나오는 아이의 기저귀와 물티슈를 처리해주었다. 너무나 고마운 천군만마와 같은 손길이지만 방 안에서의 일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고열로 지친 아이는 한시도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잘 때도 안겨서 잤고, 잠시라도 침대에 내려놓으면 엉엉 울며 나에게 기어 왔다. 내 얼굴을 꽉 붙들고 볼을 물었다. 마스크를 써도 잠시뿐이었다. 해열제를 먹어도 39도 밑으로 열이 떨어지지 않는 아이는 내 피부를 만지고 빨고, 품에 깊이 안겨야 진정할 수 있었다. 결국 12일 오후, 나도 양성 판정을 받았다. 나와 아빠는 양성, 다행히 남편과 엄마는 음성이었다.



 아이는 꼬박 이틀 반을 고열에 시달리다가 어제 늦은 오후부터는 해열제 없이 정상체온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가 아픈 이상 함께 격리되는 나는 당연히 옮을 거라 생각했지만, 각오에도 불구하고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아이와 바통 터치라도 한 것처럼 어제저녁부터 마른기침을 시작했다. 엄마는 예전 어른들은 감기는 옮기면 낫는다 했다며, 아기가 제 엄마한테 옮기고 가볍게 털어냈나 보다 했다. 이제 우리 딸은 어떡하나, 핸드폰 너머로 이어지는 엄마의 씁쓸한 말에 '아프다, 힘들다' 어리광 피우고 싶은 마음도 일었지만 정말로 아이가 나한테 코로나를 옮기고 이 몹쓸 병을 털어냈다면 몇 번이고 받아내겠다. 지금 이 순간도 남편이 가져다준 미지근한 물로 기침을 누르고 있지만 이깟 기침이 대수일까. 열이 올라 벌게진 볼로 엄마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에게 물수건으로 뜨거운 몸을 닦아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기력함보다 훨씬 낫다. 축 늘어져 잠든 아이를 보며 혹시 의식을 잃은 건 아닐까 일부러 볼을 꼬집어 깨워보는 불안함보다 훨씬 낫다.


 아직 남은 격리기간 약 100시간. 아이의 격리가 해제되더라도 이틀 늦은 나의 격리기간에 맞추어 우리는 함께 방을 나설 예정이다. 아이가 아플 때는 남은 격리 시간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하루 24시간은 아이의 해열제 복용 시간을 기준으로 다시 설정되었다.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고 나니 비로소 시계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열이 오르고 기침, 가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나와 코로나를 쫓아내고 씩씩해진 9개월 아기의 공동 격리는 아직 100시간이 남은 것이다.


 묵직한 두통을 안고 아이와 함께 지낼 시간을 생각하니 막막함이 앞서지만, 3대가 함께 사는 우리 집에서 아이와 나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제 잡고 서서 걷는 재미를 알게 된 아이를 작은 방 안에 붙들어놓기란 쉽지 않지만, 공동육아로 항상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아이를 나 혼자 돌보기란 막막하지만 시간이 지난 언젠가는 이 날을 오롯이 나와 아이 둘이 보낸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아이와 나의 100시간짜리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아이의 물건을 문 앞에 놓고는 아주 잠깐 열리는 문틈으로 아이를 보기 위해 고개를 쭉 빼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알아보고는 문 밖에서 소리만 나면 혹 아빠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문만 쳐다보는 아이의 절절한 멜로씬도 다음 주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자꾸만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붙들기 위해 책상 서랍에서 스티커와 메모지를 꺼내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주고, 창문 밖을 구경시켜주었던 오늘도 몇 년 뒤에는 '그런 때도 있었다'며 명절마다 이야기할 레퍼토리가 될 것이다. 언젠가는 마스크를 쓴 사진을 보여주며 네가 태어날 때에 이런 일도 있었다며 이 코로나 시대를 설명해 줄 날도 올 것이다.


 그러니 아가야, 네가 그런 것처럼 엄마도 나쁜 바이러스 얼른 쫓아낼게. 우리 남은 100시간 재미나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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