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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Jan 17. 2023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앗, 차가워. 조리사님은 손 시려우시겠어요."

"열악한 환경이긴 하죠.."

.

.

열악하다. 그게 내가 처음 이 어린이집을 마주했을 때 느낀 점이었다. 1평도 되지 않는 주방. 

'여기서 어떻게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시지?' 싶을 정도로 조그맸다. 주방과 유희실은 작은 간이 문 하나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면 주방이 전부 보이는 형태라, 개인적으로 쉬기도 불편할 것 같았다. 

또, 화장실은 왜 하나인지. 교사용 화장실이 따로 없다는 것에서는 '그렇구나.' 했지만, 아동용 변기를 같이 써야 한다는 말에 경악했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그 작은 변기조차 이제는 적응되어 아무렇지 않게 쓴다. 아무렇진 않지만, 그렇다고 자주 가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업무 중에 화장실을 잘 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2개만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일해보니 새롭게 보이는 불편한 환경들. 


"띵-동"

어린이집에 띵동 소리가 울려 퍼지면 선생님들이 급하게 달려 나간다. 그리고 제일 먼저 달려 나간 선생님이 어떤 아이인지 확인 후 "00이요~"하고 외친다. 그러면 그 반 선생님께서 뛰쳐나오신다. 벨을 누르면 누가 왔는지 직접 가서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말이다. 내가 어린이집 경험이 많지 않아서 다른 곳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에 실습하던 곳에서는 반별로 인터폰이 설치되어 있었다. 밖에서 학부모가 벨을 누르면, 해당 반 인터폰에서 누가 왔는지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문 열기' 버튼을 누르며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마중을 나가곤 했다. 뛰쳐나가지 않아도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었고, 교실에서 바로 문을 열 수 있었다. 

'왜 인터폰을 설치를 안 할까.'싶다가도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속으로 삼킬 뿐이다. 


또 화장실이 하나인 것은 얼마나 불편하던지. 실습하던 어린이집에서는 각 반 별로 싱크대가 있었다. 거기서 아이들, 교사들 손도 씻고 양치도 했었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어린이집에는 반별로 싱크대나 세면대가 없다. 그래서 손을 씻으려면 교실을 나서야 한다. 그건 문제도 아니다. 문제는 좁디좁은 화장실에 변기는 2개, 세면대는 1개라는 점이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점심 먹고 양치할 때가 곤혹이다. 아이들은 30여 명 되는데, 세면대는 1개라니. 30명에다가 교사까지 35명이 양치해야 하는데 세면대가 한 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양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애들도 교사도 가끔은 긴긴 기다림 끝에 양치를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를 보고 '와.. 화장실이 1개라서 엄청 불편하네'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편한 건 가시지 않고 있다. 어쩔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다. 빠르게 아이들이 화장실을 가거나 양치를 못 한다는 점도, 그로 인해서 활동이 지체된다는 것도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다. 


화장실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만, 주방에는 나오지 않는다. 고로 조리사님은 내내 찬물로 설거지를 하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매일같이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가신다. 안타까웠다. 또 난방도 반별로 차이가 났다. 우리 반 같은 경우 후끈해 질정도로 난방이 잘 되는데, 우리와 제일 먼 교실은 겨울에 꽤 춥다. 아침에 냉골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따뜻해지긴 하지만, 이른 아침에는 꽤나 춥다. 그래서 아이들 없는 틈을 타 난로를 잠시 틀어놓곤 한다. 그 반 선생님께서는 아침에 너무 춥다며 항상 담요를 두르고 계신다. 이토록 열악하다니. 


'좀 더 좋은 환경으로 개선해 주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나는 뭐든 비효율적인 것은 싫어하는 편이다.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된다면 안 하기를 택하는 편이다. 더 좋고 효율적인 방식이 있다면 그 방식을 택하는 편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SNS 광고를 한 편 봤다. 욕실 벽에 붙여 쓰는 난방기였다. 물에 젖어도 끄덕 없는 난방기. 교실에서 난로를 못 쓰는 이유가 아이들이 위험할까 봐 못 쓰는 거였는데, 이렇게 높게 벽에 다는 난방기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콘센트는 위험하니까 교구장 뒤로 배치하면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격은 약 10만 원 초반 정도 했다. 광고를 보며 계속 그 냉골 교실이 생각났다. 그래서 다음 날 선생님에게 말했었다.

"선생님, 벽에 설치하는 난방기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런 거 설치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것도 다 돈이니까요.."

나의 해맑은 어조와 대비되는 선생님의 씁쓸한 어조. 


환경을 개선하는 건 쉽지 않구나. 우리는 그저 노동자고, 모든 권한은 리더인 원장님에게 있는 거니까. 그치. 다 돈이 드는 거지.. 개인이 설치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어린이집에서 해주면 참 좋을 텐데. 원장님은 이런 열악함을 알까 싶었다. 아마 아시겠지. 불편하고 열악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은 끊어져버렸다. 언젠가 이런 환경이 바뀌어가지 않을까 하던 조그만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 


아아, 나는 계속 침묵하기로 했다 이 불편함에 대해.

이 열악함에 대해 수긍하기로 했다.

이 열악한 환경은 나아질 수 없구나. 

우리는 계속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구나. 

우리들은 힘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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