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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Jan 10. 2023

딱딱한 내 마음이 녹을 때

사르르 녹는다

"선생님, 사랑해요!"

.

.

.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대체교사 분이 온 지 며칠쯤 됐을까.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그분께 알려줄 것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단지 몇 개월 더 빨리 왔다고 알려줄 것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막내로서 물어보는 순간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니. 기뻤다. 기쁘게 알려주었지만, 그런 기분은 며칠 가지 않았다. 대체교사분은 처음에만 헤매고 금세 적응하셨다. 심지어 노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 현장에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있던 분이셨겠지. 아이들 이름이나 칫솔, 양치 컵, 이불 등의 위치만 모를 뿐 그 외의 것들은 나보다 능숙하셨다. 지켜보고 있으면 내가 배워야 할 정도로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이 자연스러우셨다.


더 이상 알려드릴 것이 없었지만, 그 반의 이불은 내가 깔게 되었다. 원래도 내가 도와줬던 반이기에 그냥 내가 전부 깔아드렸다. 대체교사분도 그게 편하신지 내가 이불을 깔고 있으면 다른 일을 하셨다. 이불은 암묵적으로 내 몫이 되었다. 오늘도 점심 일과를 마치고 낮잠 시간이 찾아왔다. 아까 내가 깐 이불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눕기 시작했다. 우리 반은 아니지만, 괜히 기웃기웃 거리게 된다. 아이들이 잘 누웠는지, 도와줄 건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이불을 깔고 누워버렸고 나는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반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주섬주섬 덮어주고 있자,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이 아이. 유독 밝고 칭찬을 많이 해주는 아이다. 사랑이 넘치는 아이다. 저번에는 날 보고 "선생님, 예뻐요."라고 말해서 날 웃게 만들더니, 오늘은 또 다른 말로 날 웃게 하는구나. 딱딱하던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하루종일 굳어있던 얼굴 근육이 풀어졌다. 아이들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일터는 일터였다. 나는 하루종일 웃는 일이 잘 없다. 같은 반 선생님과 가끔 떠들기는 하지만, 온통 아이들 얘기뿐이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나'를 잃는 순간이 많다고 느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순전히 '아이들'을 위한 것이지 내가 주체가 되는 일이 없었다. 

'애들이 위험하니까.'

'애들이 좋아하니까.'

나를 잃고 일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잘 웃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은 시시콜콜 떠들며 여유롭게 웃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좀만 긴장을 풀면 우리 반 아이들은 사고 치기 일쑤였다. 영아반은 눈을 한시도 뗄 수가 없다. 일하면서 가끔은 웃어도 되는 건데. 여유를 갖고 하하 호호 떠들고 아이들과 장난쳐도 되는 건데,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일하면 일에만 집중하고 수다를 떨면 수다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다 보니 동시에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지 않겠나. 나는 일을 택했고 오늘 하루도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얼굴과 몸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런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이. 일하면서 행복할 때는 이런 순간들이다. 내가 준 사랑에 비해 한없이 큰 사랑을 받는 순간 말이다. 아이들은 참 순수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잘도 한다. 본지 얼마 안 되어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나에게 달려와 안긴다. 처음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난 해준 게 없는데 나에게 달려와 안기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주니 말이다. 지금도 그런 순간이 오면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지만, 행복하다. 갑자기 맥락도 없이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순수함, 그리고 거기에 담긴 사랑까지.  어른의 세계에서는 절대 느끼지 못하는 이런 사랑 표현들을 들을 때 나는 행복해진다.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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