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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Dec 27. 2022

직장에 분위기 메이커가 있다는 것

그것이 주는 의미

"안녕하세요~"

그리웠다. 어제 휴가 쓴 이 선생님이 말이다. 선생님의 밝고 활기찬 인사는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제는 가뜩이나 피곤한 상태인데, 어색하고 낯선 반에서 일해서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 반 선생님도 내가 좋아라 하지만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지진 않는다. 그분은 다정하지만 어딘가 과묵하신 분이다. 아, 과묵이라는 말보다는 시크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말은 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래서 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 많은 동료가 필요할 때도 있다. 바로 어제 같은 날 말이다. 피곤해 죽겠지만 일은 해야 하는 그런 날들. 그런 날에 에너지 넘치는 사람과 붙어있으면 나도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선생님, 휴가 잘 쉬셨어요?"

반가움에 내가 먼저 말을 붙였다.

"어제 아들이랑 신랑이랑 @@에 갔는데.. 거기가 어찌나 크고 높던지 헥헥거리면서 올라갔는데 아들은 신나 가지고 '엄마 빨리 와~!' 하는데....."

한번 말을 시작하자 웃는 얼굴로 어제, 그제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 사실 별로 궁금하진 않다. 선생님은 본인의 아들들이 그렇게 좋으신지 매일같이 아들 이야기를 하신다. 아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신 게 느껴져서 흐뭇하긴 하지만, 20대인 나에게 그리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긴 하다. 그런데 계속 듣고 싶어 진다.


"와 진짜요? 그렇게 높아요?"

"네. 계단이 빙글빙글 높게 있는데..."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선생님은 더 자세하게 알려주신다. 그러다가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신다. 선생님 이야기는 어딘가 버라이어티해 보인다. 그러고 사진을 보면 선생님 말씀이 전부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나는 더 놀란 표정과 리액션을 취하곤 한다.


그렇게 한창 대화를 했다. 대화가 끝난 후엔 나도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어딘가 싱글벙글 즐거운 상태가 된다. 선생님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날은 대체로 기분이 좋다. 퇴근할 때도 '아싸 퇴근~'하며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나가곤 한다. 어제는 선생님이 없어서 축 처져있는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는데, 오늘은 선생님이 계셔서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나는 직장에서 내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본인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선생님이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생각해보니 난 내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데도 대화가 매번 이어진다. 선생님께서 수다스러운 면모가 있는 듯 하지만 나는 그게 좋았다. 수다스럽지만 나의 사소하고도 예민할 수 있는 사생활은 물어보시지 않으신다. 선을 넘지 않고 적절한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왔다 갔다 이야기하신다.


흐뭇하게 집에 가는 길, 문득 선생님의 이야기 자체는 재밌는 내용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사실 평범했다. 오늘은 가족들과 휴가 때 놀라간 이야기를 하셨고, 저번에는 아들이 눈길에 미끄러진 이야기를 하셨었다. '이런 이야기가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재밌는 건지,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행복한 표정이 좋은 건지 헷갈렸다. 아무렴 어때. 뭐든 좋다. 선생님이 있어서 언제든 분위기가 명랑해진다. 다 같이 피곤에 절어있어도 선생님께서 입을 여시면 다들 경청해서 듣곤 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분위기 메이커.


어제오늘 나는 그대로인데, 옆에 있는 사람이 달라지니 나도 달라졌다. 분위기 메이커, 수다쟁이 선생님의 존재만으로 웃으면서 일하고 웃으면서 퇴근했다. 한 사람이 주는 에너지가 많은 걸 바꾼다. 어제는 일터가 싸늘하고 썰렁했는데, 오늘은 어쩐지 따뜻하고 꽉 차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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