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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Mar 05. 2023

어린이집 교사가 느낀 저출산의 심각성

먼 미래의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 퇴사하세요?"

능력도 있고 이 일을 오래 하신 분이 왜 돌연 퇴사를 하시지?

나처럼 다른 일이 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눈은 금세 토끼눈이 되었다.

.

.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하고..."

아. 이건 분명 뭐가 있다. 보조교사인 나는 어린이집의 상황 모두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눈치껏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마지막 회식날이다. 

수료식도 마쳤고 곧 새 학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나와 선생님 한 분은 퇴사를 한다.

나는 보조교사였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그리고 같이 퇴사하는 A 선생님께서는 아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여 그만둔다고 하셨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다.


근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일까. 나와 A 선생님 말고 또 다른 B선생님이 엉엉 울고 있다. 원장님은 저런 아리송한 말들을 하며 그분께 사과 아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설마 퇴사하시는 거야? 왜? 근데 분위기가 이상한데..?'


엄숙한 분위기에 차마 묻지 못했다. 모두가 눈물을 참는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기쁜 상황은 아니기에 조심스러웠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 있는 힘껏 입을 닫았다. 몰라도 아는 척 분위기에 동조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슬퍼졌다. 워낙 능력 있으신 분이니까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셨나 보다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2차 회식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에 기회가 생겼다. B 선생님과 나의 거리는 멀었으며, C 선생님은 내 옆에 계셨다. 당사자인 B 선생님께 직접 물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나만 모르는 이 일에 대한 대답이 필요했다. 이대로 퇴사하면 평생의 의문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C 선생님께 소곤소곤 여쭤봤다.


"혹시, B 선생님 퇴사하세요..?"

"네. B 선생님 내일이 마지막이에요."

"헉... 왜요?? 왜 퇴사하신대요??"

"이번에 애들이 없어서....."


저출산으로 인해 원아가 부족하여 결국 반을 줄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어린이집에 온 지 1년 차인 두 분이 운영하던 반은 영영 사라져 버렸다. 5개의 반 중 2개의 반이 사라졌다. B 선생님은 사실상 해고를 당한 것이었다. 


수많은 이유를 떠올려봤지만 '저출산'이라는 퇴사 사유는 떠올리지 못했다. 뉴스에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4년 동안 8000개의 어린이집이 사라졌다고는 해도, 그건 일부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경기도 도심이었고 주변에 빌라나 아파트도 즐비해있는 곳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도 여러 개 있는 동네인데 도대체 왜? 그렇게나 아이가 없다고?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먼 미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당장 내가 일하는 우리 지역의 우리 동네의 우리 어린이집에 아이가 없어 선생님이 잘리다니. 턱 끝까지 쫓아온 저출산 문제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어버버거렸다.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내 동기들, 후배들이 걱정이 되었다. 나야 이쪽 업계에 있고 싶지 않아 떠난다고 하지만, 이제 막 졸업하고 어린이집에 취업한 내 동기와 후배들은? 그 애들은 이 일을 위해 몇십 년을 준비했는데 이제 막 날개를 달았는데, 몇 년 안에 아이들이 없어서 잘릴 수도 있단 말 아닌가. 또, 지금 나랑 일하는 선생님들은 연차가 10년 차 5년 차 3년 차 등 다양하다. 근데 연차에 상관없이 이 분들도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원장님의 미안한 표정도 떠올랐다. 당신도 원치 않았는데 선생님을 잘라야 하는 그 괴로움과 미안함이 전해졌다. 그렇지만 내가 원장이라도 경력이 적은 신입 선생 혹은 우리 어린이집에 온 지 얼마 안 된 선생을 자를 것 같았다. 꼭 인원을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면 말이다. 그럼 한 어린이집에 진득하게 오래 있던 분들은 그래도 해고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겠지? 근데 만약 내 친구나 동료가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끔찍하다. 


몇 년 안에 수많은 어린이집 선생님이 일자리를 잃고, 어린이집이 문을 닫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안타까움을 넘어선 감정을 느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내 일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분들에게 지금이라도 천천히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권유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분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 될 수 있다. 또 내가 뭐라고 나보다 연차가 높은 선생님들에게 그런 조언을 한단 말인가. 건방져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들은 많았지만, 삼켰다. 그저 삼켰다. 그저 선생님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기를 바라며,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전에 발 빠르게 다른 일로 이직하기를 바라면서 말을 삼켰다. 

 오늘따라 고기도 맛이 없고, 술안주도 맛이 없다. 소주는 또 얼마나 쓰던지. 가벼운 마음으로 온 회식에서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돌아간다. 집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춥구나. 봄이 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보다. 겨울이 유난히 길구나. 다시 봄이 오기는 할까? 시끌벅적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한 벚꽃 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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