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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Dec 17. 2019

마음 작명소 : 아름다움

반짝이는 것들


 


"한편 남근은 처음에 그가 아마다스의 낫으로 잘라 그것을 육지에서 파도 넘치는 바다 속으로 던지자 오랫동안 바다 위를 떠다녔다. 그 주위로 불사의 살에서 흰 거품이 일더니 그 안에서 소녀가 자라났다." -헤시오도스, <신통기>



아프로디테는 이렇게 태어났다. 아프로디테 이전 티탄신은 바다, 불, 꽃 등 자연신이다. 그러니 아프로디테의 등장은 가히 충격이라 할만하다. 그는 아름다움의 신이었으니까. 그리스인이 깨달은 최초의 미의식이 아프로디테의 탄생으로 나타난 것이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흰 거품' 은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고 '불사의 살' 이란 영원히 변치않는 바다의 표면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바다 위에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포말, 혹은 반짝임 그 자체다. 실제로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은 희랍어로 '칼로스callos' 인데 '반짝이는 빛 속에서 빛나는' 이란 뜻이다. 그리스인들이 인식한 최초의 미가 이런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다른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신통기>에서 아프로디테 다음으로 중요한 여자인 판도라의 아름다움이다. 판도라는 새로운 종류의 여자다. 그전까진 없었던 여성상, 바로 가정에 속하는 여자다. 판도라의 탄생은 결혼예식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의 아내이자, 결혼하는 여자다. 판도라의 아름다움은 '카리스charis' 다. 희랍어로 '누군가의 마음에 드는' 이란 의미다.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이 원시적 자연적 근원적이라면 판도라의 아름다움은 문명에서 자란 근대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판도라의 탄생은 가정을 꾸려 솥을 걸고 불을 피워 밥을 짓는 문명의 등장이다.



우리 말 '아름다움' 의 어원엔 해석이 여럿있는데 그 중 '알다, 앎' 에서 나왔단 게 가장 널리퍼져있다. 그리스인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것이라면,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움은 '무언가를 아는 것' 이다. 


편지함을 뒤적거리다가 스무 살 때 받은 쪽지를 발견했다. 쪽지엔 "니가 언어문제를 설명할 때 눈이 반짝거린다" 고 써 있었다. 그 아인 '잘 아는 문제를 설명하며 눈을 반짝이는 나' 를 보고 예쁘댔다. 아름다움의 콩깍지! 분명 누군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그저 지가 아는 거 자랑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고 봤을텐데.



A는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름다운 건 아니다" 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난 2009년 일기에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걸 보고싶고, 알고싶다" 라고 썼다. 아마도 난 아름다움을 좋아하나보다. 하지만 내가 아름다운 사람은 아니다. 사실 그게 뭔지도 잘 모른다. 반짝임인지 아는 것인지 혹은 그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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