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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Dec 17. 2019

마음 작명소 : 진부함

'웃음꽃'을 처음 쓴 사람은 누굴까


일본에서 살던 2010년 어느 일요일이었다. 나는 매주 일요일마다 이루마시 주민센터에서 할머니 아주머니들께 한국말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다. 


그날은 야마시타 씨가 <웃음꽃이 피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물었다. "웃음꽃이라는 꽃이 있나요? 무슨 꽃인가요?" 순간 아주 약간 당황했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는 웃는 모습을 꽃에 자주 빗댄다고, 누군가의 웃는 모습이 마치 꽃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예컨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웃는 모습은 꽃이 가득 핀 꽃밭만큼 아름다우니 그런 모습을 두고 웃음꽃이 핀다, 고 비유한다는 것이다.  


설명을 들은 야마시타 씨는 두 손을 가슴으로 모으더니 "어머나, 정말 아름다운 뜻이네요. 좋은 표현이네요. 너무너무 아름답네요" 라고 감탄했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였던 야마시타 씨의 표정이 소녀처럼 고와서 순간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놀라웠다. '웃음꽃이 피다'라는 표현이 그렇게 아름답고 좋은 표현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닳고 닳아서 지겨워진 사유에 상대가 진심으로 감동받으니 어쩐지 나도 찡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정말 아름다운 표현이네요. 잘 외워서 자주 쓰세요.



누군가의 웃는 모습을 처음으로 꽃에 빗댄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는 누구의 모습을 보고 꽃을 떠올렸을까. 꽃이라 부를만큼 어여쁜 웃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제는 닳아버리고 지겨워져 빛을 잃은 '웃음꽃'도 그의 처음은 틀림없이 반짝반짝 빛났을텐데. 닳아버릴만큼 자주 쓰였단 건 그안에 모두가 공감하는 진심이 있었기 때문인데. 내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 마음을 홀대했다. 


야마시타 씨 덕분에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던 '웃음꽃'이라는 표현이 새삼 소중하고 새롭게 다가왔다. 그날 이후로 누군가의 웃는 모습을 보면 절로 꽃이 떠오르고, 사람의 웃음은 참 아름답네, 라며 나도 빙그레 웃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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