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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Dec 17. 2019

마음 작명소 : 의문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가



친구의 스웨덴인 친구가 국내 대기업 해외법인의 최종면접을 봤단다. “니 인생의 최대 역경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나”는 한국인 면접관의 질문에 그는 “나는 좋은 환경에서 평탄하게 살아와서 큰 역경을 겪거나 극복할 일은 없었다”고 답했다. 이 대답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나중에 그는 ‘도대체 그런 건 왜 묻는거냐’고 물었고 내 친구는 “지극히 한국적인 질문이다”고 답했단다.   



‘도대체 그런 건 왜 묻는거냐’는 질문이 신선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정말 안 묻는 지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묻지 않는 내용이라면 우리는 왜 굳이굳이 역경과 고난과 극복의 경험을 강조하는 걸까. 나 역시 2011년 자기소개서를 쓸 적엔 내 인생의 고난과 역경의 극복 스토리를 쥐어짜야 했다. 헌데 스물 다섯까지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온 나에게 뭐 그리 대단한 역경이 있었을라구. 아주 사소하고 작은 고난을 파고들어 확대해석해 써낸 자소서를 보며 ‘남들은 나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경이 있을지도 몰라’라는 자괴감에 시달리곤 했다. 남의 역경과 불행의 경험까지 탐내던 시기. 더 불행한 고난과 극적인 역경과 훌륭한 극복의 자소서에 대한 욕망. 말하자면 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를 탓했지 무리한 질문을 하는 쪽에 의문을 가지진 않았다. 필요한 질문이겠지.. 싶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나라의 역사가 고난과 역경 그 자체라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런 질문을 내뱉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움’은 당연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그게 벽안의 외국인에게는 생경하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고난과 역경에 집착해야할까. 사는 게 고난이고 일하는 게 역경이어야만 하는 당연한 이유가 있을까. 같은 의도의 질문을 나에게 하라고 한다면, “니 인생에서 가장 재밌게 한 일이 뭐냐. 왜 재밌었냐. 재밌어서 어떻게 했느냐”라고 물어보겠다.


지원자의 재미와 즐거움을 궁금해하는 회사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사는 게 반드시 재미는 아니지만 반드시 고난도 아니듯이, 일하는데 극복도 필요하지만 즐기는 것도 중요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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