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very Temple of the Winds
휴가 때 읽을 책으로 <테스>랑 <엠마>를 들고왔다. 별 생각없이 테스부터 잡았는데 미투도 생각나고... 나이 먹고 다시 읽으니 어렸을 때랑은 다른 차원의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닥 안좋아하는 책인데도 들고 온 이유는 마지막에 테스가 스톤헨지에서 잠드는 장면 때문이다. 알렉을 죽이고 에인절과 도망치던 테스는 솔즈베리 평야에서 스톤헨지 돌무더기를 발견하고 그 제단 위에 마치 희생제물처럼 누워 잠든다.
하지만 실제로 찾아간 스톤헨지는 가까이 갈 수 없게 펜스가 둘러쳐진 상태였다. 게다가 도대체 테스가 왜 이렇게 나무 한그루 숨을 곳 조차없는 평원을 향해 도망쳤는지 모르겠다. 좀 더 숲으로 가지 않구선? 이건 뭐 그냥 잡히겠다는 이야기밖에 안되는 풍경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풀밭 위로 바람이 미친듯이 내달렸다. 에인절이 스톤헨지를 보고 "바람의 신전이네" 라고 말한 게 이해가 됐다. 정말 너무 바람이.. 불어서.. 눈물이 멈추지 않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테스는 왜 이곳으로 도망쳐왔을까... 소설 속으로 들어가 테스를 만날 수만 있다면
다음 여행지인 바스(bath)로 도망치라고 말해주고 싶다. 스톤헨지에서 차로 40분 가량 떨어진 바스는 영어 목욕하다 bath의 어원이 된 곳이다. 영국에서 유일하게 온천이 나오는 곳으로(자매도시 리스트에 벳푸가 있었음ㅎㅎ) 로마가 이 섬을 정복했을 때 목욕탕을 크게 지었단다. 이후 앤 여왕 때 계획도시로 개발한 뒤 귀족과 젠트리가 모여 파티를 즐기는 환락의 도시(?)가 됐다고. 기왕 도망칠거면 이렇게 사람 바글바글 북적북적하고 뜨신 탕도 있는 곳으로 피하란 말야, 테스...
스톤헨지때문에 테스를 들고왔다면 <엠마>를 들고 온 이유는 바로 바스에 올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바스엔 제인오스틴 박물관이 있다. 정작 제인오스틴은 바스에 4년밖에 안 살았다던데 왜 고향도 아니고 죽은 곳도 아닌데서 더 난리인지 몰겠지만 돈 되는 아이템이라면 일단 연을 대고 보는 것은 기실 당연한 일 아닌가. 혹시나 해서 투어 가이드에게 유독 바스에 제인오스틴 박물관이 만들어진 이유를 물었더니 궁금했던 답 대신 "아 제인오스틴~ 별로 예쁘진 않았어요" 라는 말이 돌아왔다. 영국 화폐에 얼굴이 실리고 지금까지도 주구장창 재창작되는 작품을 쓴데다 세익스피어 다음가는 인기를 구가하는 영문학의 대표작가의 첫 소개가 <예쁘지 않다>는 건 뭘까ㅎㅎ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테스와 미투를 떠올리고 만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