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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ky May 06. 2021

'현실 판타지'라는 장르가 가진 힘

드라마 <나의 아저씨>

2018년 방영되었던 <나의 아저씨>. 당시 여러 논란을 핑계로 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일련의 계기(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라는 인증 등.. )로 보게 되었다. 왜 이제야 봤을까 싶은 생각과 함께, 영화 전반을 감싸는 우울의 정서와 배우들의 연기력에 스며들었다. 초반을 넘겨야 재미있다는 사람들의 말과 다르게 나는 1화부터 마음이 저렸다.


주변에도 이제 와서야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 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볼 때 넷플릭스 드라마 TOP 10 안에 속해 있기도 했다. 하나같이 쳐지고 우울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 드라마가 지금까지도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며 요즘 우리 삶도 참 쉽지 않구나, 현실이 눅눅하구나, 싶었다. 그래서 은연중에 이 우울한 삶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나의 아저씨'를 찾게 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문득 속이 갑갑해졌다. 어쨌든 이 드라마는 과연 처절하게 우울했다. 드라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지하철은 출퇴근 길에 힘겹게 올라타 있는 우리들의 삶도 유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렇게 현실적임에도, 내가 이 드라마를 보고 '판타지'라고 생각한 이유는 온정, 진심, 이해, 공감을 선택하는 이들이 모였기 때문인데, 그 이야기를 인물 별로 조금씩 해보려 한다.



진심이 닿으면 변할 수 있다 - 이지안(아이유)

여러 환경이 지안을 때론 영악하게, 때론 대범하게 만들었다. 사채업자에게 돈을 갚으면서 할머니도 모셔야 했기에 돈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돈을 훔치기도 하고, 도준영 대표를 찾아가기도 한다. 누구보다 빠르고 영리하게 사건 사고를 만들어 일을 진행시킨다.


동훈이 그런 지안을 변하게 만든다. 진심으로 4번 이상 잘해주면서. 환경에 따라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영악해지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우리는 성급한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그런 이들을 '원래' 그런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과 닿으면 변할 수 있다.


슬퍼지고 싶지 않아서 화내는 사람 - 이광일(장기용)

'실은 모두가 울고 싶을지 몰라 슬퍼지고 싶지 않아서 화내는지도 몰라' 아이유 unlucky 가사인데, 광일을 보며 떠올랐다. 사채업자의 아들 광일은 착한 아이였지만, 아버지를 지안의 손에서 잃고 악질 사채업자가 된다. 지안을 아버지처럼 똑같이 때리고 돈을 갚으라고 집착하며 괴롭힌다. 그가 지안을 괴롭히는 장면은 끔찍하지만, 아버지의 제삿날 술을 들고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환경이 낳은 사람의 성질은 진심이 닿으면 바뀔 수 있다. 광일은 우연하게 지안의 진심을 듣게 되고, 마지막에는 지안을 돕는다. 어쩌면 광일은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게 아버지의 분노라서, 그리고 지안을 좋아했던 '마음'과 지안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의 충돌에 - 모든 감정 표현을 잃고 분노만 남았던 것이 아닐까. 그걸 알아주었던 한 마디가 광일을 움직였을 것이다.


잘못에 진한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 - 강윤희(이지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잘못을 저지른 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100% 인정하고 뉘우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윤희는 달랐다. 분륜을 하면서도 남편을 걱정하고, 분륜의 상대가 '나쁜', '치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잘못을 뉘우친다. 그리고 그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위의 인물들 외에도 세상 가장 정직하고 바른 동훈(이선균), 상처 투성이임에도 겉으론 발랄하게 사람들을 챙기는 사려 깊은 정희(오나라), 지안을 위해 도 대표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선처해준 동운(정해균) 등. 이타적인 선택을 하는 인문들이 다수 등장한다.


즉, 드라마 전반의 상황은 현실적이었지만, 이들의 태도와 선택에서 '판타지'를 보았다. 그 선함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엔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현실 판타지'라는 장르는 이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지난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 때, 이들처럼 이타적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만들어주는 매력. 그러면 우리도 이들처럼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매력.


지안의 할머니의 말처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소중한 인연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르고 선하게 살아가다 보면 아무리 힘들고 우울한 현실일지라도 잘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아저씨>는 이런 생각을 만들어 주기에 그렇게 나의 인생 드라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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