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주키 Mar 27. 2021

시인 엄마는 이렇습니다

꽃의 사서함*

2014 Brno, Czech


 글을 쓸 때 글감은 보통 아이폰 메모장에서 꺼내곤 한다. 서랍장에 물건을 넣고 잊어버리듯, 출퇴근 길에 생각난 것들을 메모장에 기록해놓는 버릇이 있다. 이 버릇은 꽤 오래된 버릇인데, 그래서 별 문장이 다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메일 주소(아마 사진을 보내준다고 했겠지만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노래방에서 부르려고 적어둔 노래들

 고민이라는 제목(인턴, 워홀, 취업에 관한 긴 글)의 글

 누군가에게 고백하려고 적어둔 오글거리는 글


 보통은 여러 단어 혹은 문장으로 적혀 있는데 제목뿐인 여섯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보고싶강 
2014. 9. 25. AM 1:41. 추가 텍스트 없음.

 ‘당’을 ‘강’으로 친걸 보니 아마 취해있었던 것 같고, 마무리에 자음 'ㅇ'을 붙인 거보니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었다보다.

 저런 말을 적게 된 이유가 뭔지 궁금해져서 생각을 떠올려 보지만, 이유를 모르겠다. 정말로 취해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또다시 또 다른 서랍장을 열어본다. 클라우드라는 말보다 드라이브라는 말이 익숙할 때의 저장 공간이다.

 연도-국가별로 정리된 사진첩 중, '2014체코_첫인상'이라고 되어있는 폴더를 열었다. 그 폴더에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살아보겠다며 공항을 출발할 때부터 약 2-3주가량의 사진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정보를 눌러 뜨는 사진의 날짜 정보 덕분에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날은 체코 브르노Brno 학교 기숙사에 짐을 푼 첫 주 주말이었다. 첫 주는 밥을 기숙사 식당에서 사 먹었다. 그런데 돈을 아낌없이 쓰는 교환학생들이 모여있는 기숙사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체코 치고는 저렴하지 않았다.

 “별로 맛있지도 않은 밥에 여행경비를 사용하느니, 요리를 하자.”

 그동안 모은 돈이 아까워서 직접 해 먹기로 결심한다.


 기숙사의 친구들도 저녁시간이 되면 공동주방에서 같이 요리를 해서 나눠먹었고, 나도 한국 요리를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던 이유도 있었다.

 기숙사 친구와 저녁으로 파스타를 하는 동안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이제 요리 좀 해보려고 하는데, 주방도구 어디서 사야 돼?"

 "저기 외곽에 이케아Ikea라는 대형 소품샵이 있는데 거기가 봐!"


 서류 문제로 학기를 약 2주 정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나 혼자만 이런저런 도구가 없었다. 그래서 따로 도움을 받기보다는 동네도 둘러볼 겸 이케아를 혼자 가기로 했다.

 주말이 되고 트램 종점에 있던 기숙사에서 트램에 올라타 시내로 향했다. 시내에는 이케아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선하고 깨끗한 체코의 가을 날을 구경하며, 생각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때는 이케아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어서 그렇게 힘든 곳인지 몰랐다. 한번 들어가면 소품부터 침대, 조명 섹션을 지나 마지막으로 조립식 가구가 있는 큰 창고형 공간을 통과해야지만 상점 밖으로 탈출할 수 있다.


 내가 사야 할 것은 고작 프라이팬과 밥 지을 냄비 정도였으나 너무 많은 화려한 물건들에 이상하게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처음 살아보는 외국에, 자유 여행자 신분이라 그랬던 것 같다.

 해외 체류 초반이라 돈은 아끼고 또 아껴야 했기에 내가 구매한 기구들조차 개중에 가장 저렴한 것이었다.

 내가 사지도 않을 것들을 쭉 둘러보고, 이케아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오는데 코끝을 맴도는 가을 공기가 꽤나 쌀쌀했다.


 정류장에서 시내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는데, 볼기짝까지 차가워졌다. 그리곤 이상하게 엄마 생각이 났다. 사실 나는 꽤나 독립적인 사람이라서 군대에 있을 때도 전화를 잘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체코에 도착해서도 "잘 도착했습니다."라는 전화 외에는 일주일 동안 카톡 하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엄마가 떠오른 것은 아마도 의지할 곳이라곤 아무도 없는 체코 어느 외곽 동네의 지금 내 모습이 과거 어느 날의 엄마와 조금은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는 누나와 내가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돌보시면서, 어린 시절 꿈을 이뤄 모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등단하시며 시인이 되셨다. 그 당시 어머니가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중학교 일일교사로 꼭 오라고 말씀드리고 친구들을 모두 불러모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이 크게 휘청하는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 겸 시인으로 따로 일을 하신 적이 없었는데, 갑작스레 일을 시작하셔야만 했다. 집도 이사를 가야 했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에 따라 우리도 변해야만 했고.

 그런데 어머니는 당황한 내색 하나 없이 여전히 당당하고 멋있는 시인의 모습으로. 또한 어머니로서 우리를 올바르게 키워내고 있었다. 혼돈과 위기 속에서도 본래 차분한 모습을 잃지 않고, 부드럽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정말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밤,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잠에서 깼는데, 어머니가 주무시지 않고 식탁에 앉아 계셨다. 어머니의 표정을 보진 못했지만, 심해 깊숙한 곳에 빠진 것 같은 공포와 막막함의 짓누름에도 여전히 강하고 당당한 모습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정류장에 앉아있던 날,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앞모습이 상상이 됐다. 당당한 모습이 아니라, 절망하고 균형이 깨진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홀로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어린 우리들 앞에서는 당당한 어머니도 밤마다 고민하고, 또 생각에 잠기셨겠지.


 나는 그저 외국에서 공부를 하며 탱자탱자 여행을 다니는데 돈을 쓰려고 저렴한 프라이팬을 샀지만, 당시 그녀는 우리 가족의 생존을 위해 아끼며 희생하고 무거운 생각들을 이어나가야 했을 것이다.

 강한 사람으로 보였던 모습마저 어쩌면 그녀의 희생이었던 것이다. 감정을 감추는 것.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것이 더 힘드니까. 아마도 폭포처럼 무언가를 쏟아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시내에 도착해서 일주일 만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당당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내가 알던 그 시인이었다.

 "밥은 먹었니?" 

 "응 엄마, 엄마는 밥 먹었어? 여기는 꽃이 정말 많다. 어딜 가든 꽃이야. 사진 보내줄게!"

  지나가던 길에 꽃이 보여서 사진을 찍어 곧바로 보내곤, 잘 지내겠다고 말하며 종료 버튼을 눌렀다.

2014 통화 중에 보낸 사진  Brno, Czech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국에 왔다.

 한국에 와서 한 학기만 보내곤, 곧바로 취업을 준비했지만 첫 해는 쉽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1년만 기다려봐."하고 말하곤, 준비하는 동안 어머니는 취업에 관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 어떤 부담도 주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1년 뒤, 집으로 난초 하나가 배달 왔다. 하얀 백자로 된 화분에는 이런 글씨가 적혀있었다.

 "아드님을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합격 축하합니다. 우리 회사와 함께 미래를..."


 이런 뻔한 글씨와 화려하지도 않은 난초 화분을 보고, 어머니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그동안 내 마음에 스크레치가 날까, 말을 아끼셨다고 했다. 그러고는 내가 체코에 나가 있을 때, 내가 꽃을 찍어 보낸 그 해에 나를 위해 쓴 시를 보여주셨다.


 시인의 아들로, 엄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들쥬키야. 그냥 평소에 잘해 임마.)





꽃의 사서함 / 이순주



  지구의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날개달린  문장을 기다린다


  책상  라벤더 화분이 있는 ,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듯 잎들을 어루만진다  끝에 묻어나는 향기

  너도 누군가 보고픈가 보다


  가슴에 꿈을 품은 자들은 스스로 단단해지기 위해 바다 건너 날아간다

  돌아올 때까지 

  침묵의 깊이는 얼마나 아득한가

   적막을 메우기 위해 꽃을 피우는 ,

  일상이 유목의 피가 흐르는 너의 향기로  몸을 기억하는 


  라벤더는 햇살 고인 창가에 앉아 지중해 연안을 생각 중이다


  세상 모든 초목은 꽃을 피워  몸의 안부를 전한다 향기를 배달하는 일은 꽃이  

  피워낸 보랏빛 꽃으로 보아  끝에 묻어난 향기의 배후는 그리움,

  드넓은 초원이 보인다


  꽃에게 말을 걸며 물을 준다

  너를 기다리며

  화분에 물을 주는  기도다




꽃의 사서함* : 에세이 제목은 이순주 작가가 쓴 동명의 시 제목에 착안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