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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호랭이 Feb 25. 2024

서른이 되면? 서른이 된 후. 마흔이 되면?

예전의 내가 떠올린 지금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가 떠올린 10년 후의 나

1. 서른이 되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떠올리며 몇 번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초중고 시절이랑 대학교 시절 두 개의 시절에 자의와 타의로 30살의 나를 떠올렸었던 것 같다.


 초중고 시절에서 떠올린 지금의 나는 아마 까마득한 존재자로 여겨져 무엇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짐작하더라도 구체성은 없는 그냥 껍데기 같은 희망사항 정도. 대학교 시절의 나는 아마 꽤 구체적으로 지금의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어떤 직업인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인간적 바람은 그 상상 안에 충분히 녹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 대학생 때 떠올린 30살의 나는 분명히 행복한 상태일 거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무슨 일을 하고, 얼마를 벌고 있으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전혀 그 상상에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어떤 정서적 상태를 갖고 있냐만이 중요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충분히 내 의지 아래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써 여겨졌고, 여겨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체성이 전혀 없었던 어린 시절에 떠올린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할 수 없으니, 꽤 실체가 보이는 대학생 때 떠올린 30살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자.


 행복한 상태인가? 그렇다. 나는 불안이 나를 엄습하고, 힘이 들고, 압박을 느껴도 결코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성인 때 나에게 불행을 떠올리게 했던 건 오로지 아버지의 요절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만든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그 어떠한 것도 나를 감히 불행하게 할 수 없다. 사람, 사건, 환경 등 나 이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불행을 떠올리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아마도 대학생 시절의 내가 떠올릴 수 없는 존재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독서와 나와 깊이 관계하는 존경하는 친구들이 나를 '(그 시절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존재자'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40살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참 궁금해진다. 그 시절의 나 역시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존재자일 것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 무엇을 하고 있을지 참 궁금하다. 내가 내린 선택의 역사들이 궁금하다. 그 선택들에 일말의 후회는 없는지, 그 결의 안에 무엇을 담았는지.


 내가 살아온 역사의 당위들을 파헤쳐보면 여러 가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과 존경이 가득한 관계, 책, 운동. 그동안의 역사 속 내가 발휘해 온 용기, 헌신, 통제, 절제, 노력, 열정 등은 모두 이 세 가지에서 비롯됐다고 얘기할 수 있다. 아마도 내가 앞으로 살아갈 역사도 이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처해진 내가 만들어갈 것임은 분명하다.


 10년 뒤에 돌아보자. 난 딱 한 가지만 분명히 점쳤다. 나의 어떤 특정한 상황이 아닌, 그때의 내 존재자에 대한 모습을. 그리고 그 모습을 형성하고 있는 원인들을.


2. 예전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기보다는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풍파가 와도 끄떡없는 사람, 결국엔 모든 시련을 긍정해 내고야 말 사람. 그와 동시에 그런 나를 끝없이 문제 삼는 사람, 이런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되어 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명예와 지위 같은 사회적 명성에 뻗어 있던 예전의 내 바람은 이제 내적인 모든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렇게 난 지금도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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