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의 순간은 자기 인지로부터 시작된다
이유를 모르고는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습니다. 걷다가 걷는 이유를 잊어버리면 일단 멈추지요. 이유가 생각나고 나서야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해야만 합니다. [페터 비에리(2011), 자기 결정, 43p]
몇 개월 전, 슬럼프 혹은 번아웃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나를 엄습했을 때를 떠올린다. 내가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허우적거리며 잘 떨쳐낼 수 있게 되어 지금은 해방된 상태지만 꽤 고통스럽게 헤매던 내 모습을 반추해본다.
나는 내가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목적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잠시 상실했었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숙명적 존재인 나에게 목표 상실은 그것이 일시적일지라도 삶의 영위에 큰 영향을 준다. 『자기 결정』 속 문장에서 난 그 답을 찾는다. 슬럼프가 내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나는 사실 '한 걸음도 옮길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내 행위의 이유를 잠시 망각해버렸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지혜를 잊어버린 채, 나는 안쪽을 바라봐야 할 때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슬럼프라는 망령을 벗어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슬럼프가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이고, 그것이 성취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마인드는 결국에는 성공해내고야 만다는 진취적 미래에 입각한다. 다르게 말하면, 당장의 힘든 현실을 타개할 요소로써 절대 승리만이 존재할 미래를 사용하는 것이다. 즉, 정작 힘든 현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슬럼프라는 녀석이 다가왔을 때, 원인을 나의 내면에서 찾아나갈 수만 있다면 당장 다가온 현실의 고통과 아픔은 그 정도가 덜할 것임은 분명하다. 답을 금방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슬럼프 자체를 인지하는 것이다. 인지 없이는 아무리 좋은 행동 강령을 세워도 실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미래를 살아갈 인간은 현실을 살아갈 인간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내가 과거에만 매몰되어 현재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미래만 바라보며 현재를 너무 방치하고 경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인간은 역사성을 띈 존재자다. 과거나 미래라는 건 현재라는 '있음' 없이는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개념들이다. 괴로운 현실을 피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애써 과거나 미래로 눈을 돌리고 싶은 것이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통제의 시작이 바로 '자기 인지'다. 현재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 펼쳐질 모든 삶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