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1Q84 1, 2, 3』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과연 진정한 나일까?
이것이 바로 소설이다. 독자로 하여금 기쁨을 주는 이야기란 바로 이것이다. 구성이 어떻고 문체가 어떻고는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가 그 이야기 속의 존재가 된 것 같은 동화와, 현실과 거리가 멀어 보임에도 마치 내 눈앞에 명징하게 펼쳐지는 것 같은 생동감을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소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재미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그 누구의 글도 읽지 않아도 된다. 그냥 펼치면 된다. 그러면 당신은 1Q84의 세계에, 고양이 마을로 가게 될 것이다.
서사의 재미는 차치하고, 이 책이 다루는 소재와 생각할 거리가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내가 사는 이 세계의 내가 진짜 나인가?'라는 질문은 많은 걸 내포하고 있다. 일단, 내가 사는 세계 이외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무지막지한 가정, 그 세계 속의 또 다른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공포스러운 가정, 그리고 가장 섬뜩한 건 '진정한 나'란 도대체 무엇으로 정의되어 있는가가 그것이다.
나는 늘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에 나만의 의견을 만들어나간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일단, 설령 지금 내가 살아가는 2024년 이외에 20E4년이라는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내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철저히 나의 입장에서 다른 세계는 지금 내 세계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저기 먼 우주의 어느 행성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세계의 내가 진짜 나일 수밖에 없으며, 여기서 '진짜 나'라 함은 내 존재를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 있는 나를 뜻한다. 진짜 내가 아니면 나의 존재에 대해 되물을 이유도 없고, 물을 수도 없다. 이게 철저히 내 주관으로 인식하는 세계의 관점에서의 답이다.
또, 지금 이 세계와 다른 세계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한한 가능성의 터전인 미래에 그 의미가 닿아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현재는 끝없이 소멸해가고 미래는 스스로를 무한히 생성해나간다. 이 무한의 순환은 그 자체로 지금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일 수 있다는 것을 뜻한. 즉, 우리가 무슨 메뉴를 먹을까 고민하다가 A라는 메뉴를 고르는 것이 B라는 메뉴를 골랐을 때와는 다른 세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해석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존재가 무화하는 그 순간까지 수십억의 다른 세계를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그 다른 세계를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환상 소설, 초월 소설로 분류하는데, 그 이유는 이러하다. (내 두 번째 견해에 의하면) 인간은 다른 세계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에도 이 책은 '두 개의 달'이라는 현실에 없는 현상을 '이상 세계 인식을 위한 매개체'로 활용했다는 점과 마침내 주인공이 세계를 '취사 선택'해냈다는 점이다. 이 세계의 내가 진짜 나인지는 살면서 떠오를 수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 질문의 끝이 저쪽 세계의 나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현실을 초월한 행위다.
이런 소설이라면, 끝없이 활자가 무한히 이어져 있어도 좋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