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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선과 악의 선행 관계와 글쓰기의 존재론적 통찰

랑또 『가담항설 1~12』

by 책 읽는 호랭이


나는 웹툰을 전혀 보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콘텐츠의 대부분은 책이고 아주 낮은 비중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있을 뿐이다. 그런 정해진 울타리 내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나에게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깨달음을 주고자 노력하시는 나의 귀인께서 이 전집을 선물해 주셨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런 웹툰이라면 책을 읽는 것처럼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만물(모든 콘텐츠)에게 책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게 내가 추구하는 지향점 중 하나인데, 만물 중 웹툰은 가능하게 됐다.

『가담항설』은 동양풍 판타지인데, 판타지 세계의 근간에 인간의 마음이 있기에 그리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평범하지는 않지만 철저히 인간적인 인간들이 폭군으로 군림하는 신룡을 막는 것이 큰 플롯인데, 그 이야기 속에 많은 울림이 있고, 깊은 통찰이 녹아져 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글'이라는 것은 핵심적인 소재로 다뤄지는데, 글 자체가 가진 존재적 특성에 대해 설명하는 점이 압권이다. 글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어떤 존재자에 의해 쓰인 결과물이다.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필시 창조할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글쓰기'가 근원적으로 우리의 바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비교적 많은 글을 쓰지만, 이 글들이 나로부터 수없이 생성되어 왔지만, 나는 그동안 나의 글이 내 바깥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글이 그 자체만으로 나의 바깥을 향하고 있다는 말이 나 이외의 타인에게 향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타인을 포함해 글을 쓰고 있는 혹은 쓴 후의 나를 향해 있을 수 있다.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은 후자에 가깝다. 난 옛날부터 남을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 적이 없다. 서평이라 부르는 내 글에 정작 책 내용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이 그러한 맥락이다. 난 내가 읽고 느끼고 생각한 것만을 글로 토해낸다. 그 순간의 나를 기록해두기 위해서다. 나의 글쓰기는 철저히 쓰고 있는 순간의 나로부터 발화해 그 이후의 언젠가의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통찰을 가능케했다. 웃기고 가벼운 웹툰 같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게 이러한 부분들 때문이다.

또한, 이 웹툰은 선과 악에 대해서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인간은 모두 선하게 태어나지만, 살아가면서 필시 악을 만나 악이 존재하지 않는 선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선을 더 우위에 둘 것이냐, 악에 편승할 것이냐는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달려 있다. 아마 웹툰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모르던 선의 세상 속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완전한 선에 악이라는 개념이 들어서는 순간, 선은 완전성을 잃어 누구에게는 희석된 선이 악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가 말하는 선과 악에 절대성은 필연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선은 누군가에겐 악이 될 수 있으며, 누군가의 악이 누군가에겐 선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착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악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아닐까?

나도 수많은 악을 경험해왔다. 덕분에 내가 생각하는 선, 옳은 삶은 누군가에겐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은 삶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난 그런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과 악이 우리 인생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개념과 인식 중 하나일 뿐이다. 공동체 세상에서 각자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법이라는 것이 있고, 우린 그 법 안에서 선과 악을 자유롭게 자신의 삶에 맞추면 되는 것이다. 사실 의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일지 모른다. 다만, 내가 선을 알고, 악을 알고, 내가 아는 선이 완전한 선이 아니라는 것만 알면 된다.

이 책을 선물해 주신 귀인께서는 말했다. 모든 웹툰이 이런 메시지를 주진 않지만, 이런 웹툰도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큰 수확이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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