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고자질하는 기도를 하다가
시력이 안좋기도 하고 스쳐지나가듯 보면서
미술관 전시회 주제 인줄 오해했던 “피난 안내도”
실제 주제는 <서울>연작
전시회 주제가 “피난 안내도”인 줄 알고 그 주제에 맞춰 한동안 작품들을 감상했는데 잘 맞아 떨어져서 줄곧 그런 줄 알았음.
실제 주제와 제목은 황규태 작가의
<서울>연작 중 <서로의 방향(각자의 길 -명동성당)>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도 오해로 시작해 잘 맞아 떨어져서 줄곧 오해속에 묻혀 그런 줄 알고 살아왔군.
힘들지만 묵은 오해의 방향을 돌려야 할때
전시회가 있던 북서울 미술관
하나님 아버지
결혼, 남편, 자녀로 묶인 가정이라는 관계는 심오하고 오묘한 주님의 섭리 안의 관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개적으로 쓰기 부끄럽지만 제가 남편과의 관계에서 절망의 바다로 빠지는 패턴입니다.
며칠 전 남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때 제가 배우자로 부터 듣고 싶었던 말은 다정한 공감의 말, 위로의 말이었어요.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 않좋아.. 걱정돼.. 아프면 안돼..’
그런 말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남편의 침묵하는 태도는 저의 분노의 불씨를 키워 활활 타오르게 했어요. (네 저는 여전히 “남편의 태도”를 탓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저의 화살같은 비난의 태도에 한 발짝 다가오지 못하고 자신의 심연으로 가라앉아 침묵합니다. 저는 그것이 큰 고통이고 절망이고 분노로 느껴져요.
저는 남편이 자신의 세계에서 저에게 ‘너는 왜 그러니’하는 비난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암으로 투병하는 처참한 상황일 때도 남편은 자기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고 내가 필요한 사랑과 위로를 나는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남편이 너그럽기를, 나의 구원자가 되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남편은 그렇게 해주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저는 스스로를 애처롭게 만듭니다.
그렇게 저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덫에 걸려든 기분이 드는데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저는 최악의 상황이 되어 곧 터질 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그 날 저는 주님의 은혜로 애써 주님 앞으로 겨우 한발짝 나아간거 기억 하시죠?
저는 그 날, 헤어나올 수 없는 끈적이는 지옥… 원망하는 마음 괴로운 마음으로 잡고 있는 그 지옥 속에서 겨우 주님을 바라보고 남편을 고자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님.. 남편은 제가 최악의 상황에 있을 때 결정적일 때 위로하지 않아요. 자기 세계로 가버려요.’
그 때 주님 제 이야기에 주신 첫 마음 기억해요.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 있을 때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따뜻함…
‘내가 위로하마.. 내 딸아..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 아프게 된단다. 아프면 안돼.. 네가 너무나 안쓰럽고 걱정되는구나..이리 오렴 안아주마.. 여기 내 곁에서 너를 사랑하는 나의 위로를 받으렴’
그리고 말씀하셨어요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는 나밖에 없단다.. 너에게 아버지인 내가 그걸 줄거야.
인간은 불완전하단다.
인간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변하지 않아.
그건 네 남편이 특별히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란다.
모든 인간이 그런거야.’
‘남편은 이래야 해, 자녀는 이래야 해, 비교하는 그림, 이상적인 그림, 완벽한 그림을 그리지 말거라.
그건 너를 힘들게 한단다.
남편과 아이들과 완벽한 사랑을 그리지 말거라.
인간의 세계에 그런건 없어. 완벽한 것은 없단다.
완벽한 사랑은 내가 주마.
이것이 사랑이 없는 절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란다.
완벽을 위해 네 방식으로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
내 안에 있을 때 인간인 너희는 완벽함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어.
자신을 버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함에서 오는 깊은 사랑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지만 또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가게 된단다.
나의 완전한 사랑이 너희를 붙들어 주마.
내 사랑은 너희를 위하여 나를 이미 버림으로 너희를 완전히 사랑함을 확증하였단다. 이 완벽하고 변치않는 사랑을 영원히 주마’
전 조금 깨달았어요.
저에게 완벽한 기준과 비교가 있다는 것을요.
남편은 이래야 해, 자녀는 이래야 해!
남편의 “태도”는 이래야 하고 자녀의 “태도”는 이래야 한다는 틀을 가지고 재고 판단하고 힘들어 하고 있네요.
남편의, 자녀의 눈의 티는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잘 못보고 있어요.
남편은 제 성격을 흡수하면서 힘들어하고 큰 아이는 튕겨내면서 서로 힘들어 해요.
그런데 주님은 그 날도 절 나무라지 않으셨어요.
넌 이렇잖니…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이런 좁은 나의 세계에 갇혀 있는 어리석은 저에게 아버지 하나님 책망치 않으시고
널 완전히 사랑하시고 위로하시겠다는 말씀을 먼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먼저 무엇이 옳은지, 제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들춰내지 않으시고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고 걱정하시는지 먼저 알려주셨어요.
‘아 그렇구나..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처럼 나의 자녀, 나의 남편, 이 세상 사람들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대답보다 위로와 사랑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마음이 움직여지는 구나. 그 때 진정한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는 구나.
내 자녀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염려와 걱정과 완벽한 기준으로 인한 세상적인 훈계가 아니라 이해와 공감과 위로의 사랑이구나.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 같은…’
제가 육체의 고통에 있을 때 주님 제가 알고 싶었던 주님의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눈물 속의 깨달음에 감사하며 주님의 은혜 안에서 전 금방 현실에서 변화될 줄 알았어요. 짠하고 말이예요.
그런데 근육이 단단한 몸이 건강한 것을 깨닫고 그 몸을 만들기 위해서 서투름으로 시작해 매일의 꾸준한 훈련이 필요한 것처럼 건강한 관계가 짠하고 만들어 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주님.
자기 연민과 완벽한 관계에 속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오직 완벽하게 의지할 곳은 아버지 하나님 뿐임을 늘 생각하고 실제로 의지하게 해주세요.
매일 주님 가르쳐주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훈련하도록 도와주세요.
오늘도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해요.
잠시도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202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