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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Oct 17. 2023

겁을 먹었다는 건

나에게 너무 또렷한 실패

크로스핏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체력도 아니고 근력도 아닌 "깡"이다. 내가 처음 운동을 크로스핏으로 시작한 것도, 크로스핏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그저 깡이 있었기 때문이다. 깡으로 해결되는 게 있다고? 생각보다 깡은 많은 걸 해결해 준다. 깡 안에는 도전하려는 향상심과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마음, 포기하지 않겠다는 끈기가 들어있으니까. 


다들 나보고 어떻게 그렇게 운동을 하냐고 물으면 그냥 말한다. 깡으로 하는 거죠. 거짓말 같겠지만 진짜다. 깡과 악만 있다면 웬만해서 못할 건 없다. 그래서 이 깡이 없다면? 그때부터는 맥없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을걸? 하고 모든 걸 비웃고 큰 벽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걸, 그게 단순한 객기가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걸 난 이제야 알았다.


한계를 정해둔 이후로는 전처럼 높이 뛸 수 없게 되었다는 벼룩의 얘기처럼, 사람도 한계를 정해놓으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크로스핏의 경우에는 1rm, 1~3번 정도 들 수 있는 나의 최대 무게를 측정하곤 한다.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내 수준을 알기 위해서인데, 1rm을 알고 나면 내 체력과 근력이 얼마나 상승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고 와드-하루 운동 내용-중에도 무게를 얼마나 설정해야 할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내 스내치 1rm은 60lb였는데 이상하게 한 번 무게를 측정하고 나면 다음으로 가기 어렵다. 


왜냐하면 실패라는 기억이 내재되어 있으니까.


당시 나의 수준이라는 건 나의 한계가 되고, 그 이상으로는 실패했다는 말이 된다. 즉 1rm은 실패하기 직전의 결과를 말하는 셈이다. 그래서 1rm을 안다는 건 자신의 실패를 안다는 것과 같다. 이 무게를 들어보고 어 될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해서 아주 조금 무게를 더한다. 그런데 그 무게가 실패하게 된다면 나한테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또렷하게 박힌다. 


나는 60lb까지 들 수 있어, 보다는 65lb는 실패했어. 이렇게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60lb를 도전했는데 아주 엉망진창으로 실패했다. 

그게 진짜, 너무 속상했다.


55lb를 들 때만 해도 괜찮은데? 하고 생각하지만 60lb가 나의 한계인 걸 아는 이상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세게 뛴다. 이게 내 마지막인 걸 아니까 실패하는 게 두렵고 겁을 먹게 된다.



최근 약 세 달 정도 쉰 탓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도 안다. 이건 그냥 겁먹었기 때문이라는 걸. 바벨을 잡는 순간 손바닥이 따끔거리고 무서웠다. 내가 실패할 것 같아서. 

"겁먹었네. 겁먹어서 그래."

코치님이 한 말은 정확했다. 난 완전히 겁먹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과거의 한계가 무서웠고 내가 다칠까 봐 두려웠고 그냥 무서웠다. 들고 나서 앉을 수 있을까? 뒤로 넘어지는 게 아닐까? 바벨을 얼굴에 맞으면? 사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도 크게 다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데. 물구나무서기를 시도하지 못했던 나처럼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나중에 영상을 확인해 보니 겁먹은 내가 보였다. 몇 번이나 도전했고 코치님은 격려해 줬다. 그 기대에 꼭 부응하고 싶었는데. 속상한 나한테 코치님은 쉬다 와서 그렇다면 다음에 또 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지, 그러면 되지. 그럼에도 겁먹은 내가 밉고 속상하고. 



아마 오늘의 실패도 나에겐 너무 크고, 무서운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겁은 나를 갉아먹고 그러다 점점 용기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방법이 없다. 내가 겁을 먹은 건 사실이고 그래서 실패한 것도 사실이다.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이 실패를 새겨두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


인정해야 한다. 겁을 먹은 건, 내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걸. 


겁먹는 거에 익숙해지지 말자. 마음껏 두려워하고 분해하자. 내 무능함을 탓하면서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말자. 지금의 나는 약하고 끈기도 부족하고 깡마저 없다. 그래도, 포기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포기하면 나는 약하고 끈기 없고 겁먹은 채로 끝나버릴 테니까. 포기하더라도 떠밀리듯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약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어떠한 불가능이 생겨서 포기하고 싶다. 스스로 포기하지 말자. 떳떳하게 포기할 수 있도록 약한 나를 인정하자. 약해진 마음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그런 건 멋있지 않으니까. 계속 하자, 하다 보면, 또 다음이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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