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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Oct 25. 2023

포기는 약한 게 아니라는 걸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야

나는 쉽게 놓지 못한다. 끈기가 있는 건 아니다. 나한테는 오기가, 집착이 있다. 그건 꽤 이상한 모양새인데 무언가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아름다운 뜻보다는 무언가를 그만둔 내가 꼴불견이라는 자기혐오에 가깝다. 뭐든 싫증이 금방 나는 편이고, 하기 싫은 건 금방 그만뒀다. 안 해도 되는 걸 왜 붙잡고 스트레스받아야 하는가. 그만두면 다 편해지는데. 줄곧 그렇게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무언가를 포기하는 건 나에게 한심한 일로만 느껴졌다. 무엇 하나 끈기 있게 하지 못하던 내가 질렸던 건지, 시작은 창대해도 끝은 엉망진창이라는 친구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던 건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는 게 죽는 것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멋있고 후회 없이 사는 내가 최우선이었다. 



예전의 내가 꾸준히 하는 게 어려웠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포기가 어렵다.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은 불쑥 들어도 진짜 그만두는 나는 상상한 적이 없다. 그럴 거면 차라리 꾸준히 하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애초에 꾸준히 할 만큼 애정을 가진 일이었다면 저렇게 고민하지 않는다. 



포기하려면 많은 게 필요하다. 후회도 미련도 없어야 하고 더 이상 이걸 하고 싶다는 내 의지도, 나아지고 싶다는 바람도, 어딘가를 바라는 이상도 없어야 한다. 내 인생에서 뚝 잘려나가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몇 번이나 물어야 한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세상이 호감과 비호감으로 나뉘면 좋을 텐데. 비율이 비슷하게 섞인 것들을 마주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포기한 건 딱 두 개다. 두 개 다 여태 살아온 내 인생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는데 그래도 후회는 없다. 하나는 오케스트라고 하나는 그림이다. 제대로 된 가치관이나 인성이 형성되기도 전에 음악을 했다. 당연하게 바이올린을 배우다 때려치웠고, 플루트를 하다 재능이 없는 걸 알았고,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호른을 하게 됐다. 3년이라는 시간이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별별 일이 다 있었고 지옥과 천국 사이에 발을 하나씩 담근 기분이었다. 내 중학교시절을 그 오케스트라로 퉁 쳐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완벽한 애 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즐거웠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 난잡함들 사이에서도 모두가 다 같이 둘러앉아 합주하던 순간을, 정신없이 연습하며 내 음을 밀어 넣던 순간을 좋아했다. 호른을 좋아해서 누구보다 연습을 열심히 했으니까. 그래서 기회만 되면 호른을 하겠다고 줄곧 생각했고 교환학생을 가서 호른을 잡을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호른을 쥐었을 때 가슴이 얼마나 뛰었던지. 마우스피스를 입에 대고 입이 부르틀 때까지 연습을 했다. 


재미는 얼마 가지 않았다. 바라는 목표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 연습은 버겁고 귀찮았다. 부원들이 살가워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합주에 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일부러 남들보다 일찍 가고 늦게 집에 가면서 호른을 연습하곤 했는데 호른을 불고 있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어딘가에서 탁 막힌 고음을 들으며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보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오랫동안 고민했고,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난 이제 호른을 연주하고 싶지 않다고. 내가 기대했던 즐거움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리듬을 만들어낼 때 느껴지던 쾌감도 없었다. 여기 까지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 직장에 들어가면 직장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싶었는데 그 꿈도 동시에 사라졌다. 좋아했던 추억만으로 지금도 좋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또 다른 건 그림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아주 대단한 착각에 빠져있었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굉장히 무모하고 멍청하고 어리석은 생각. 내가 재능론자라서, 재능이 없는 나는 소질이 없다고 비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그런 부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고, 나는 그저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어릴 적부터 곧잘 그림을 그렸다. 모작도 제법 잘했다. 또래애들보다 그림을 잘 그렸고 반에서도 꽤 눈에 띄는 편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그게 재능인 줄 알았다. 잘 그리고 싶었던 적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일주일에 연습장 하나를 다 쓸 정도로 하루종일 그림만 그린 적이 있었으니까. 좋아했다. 분명 좋아했고, 뭐든 되고 싶었다. 순진한 나는 장래희망에 화가라고 적고는 했다.


언니는 글을 잘 쓰고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엄마는 세뇌처럼 말했다.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나는 그림 대회에서, 언니는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곤 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언니가 그림을 그리고 내가 글을 쓴다. 둘 다 죽어라 하고 있다.



재료비가 비싸다는 이유와 사교육은 애들의 상상력을 망친다는 우리 집의 교육철학으로 미술학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림 그리는 언니를 보며 몇 번이나 그림을 그릴지 말지 고민을 했다. 나아지고 싶지 않아서인지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미술을 시작한 건 수능이 끝나고서였다. 재수를 시작하게 된 내가 불쌍했던 건지 엄마가 성인 취미미술반을 등록해 줬다. 처음에는 즐거웠다. 연필을 깎고 선을 긋고 그림을 그리고. 팔레트에 물감을 채워나갈 때는 눈물마저 났다. 나도 이 팔레트가 정말 갖고 싶었다고.


선생님은 친절했고 수강생들은 귀여웠다. 주로 동네에 사는 초등학생들이었는데 자기들끼리 떠드는 게 제법 귀여웠다. 그림을 몇 년 배웠다는 할머니 수강생은 화가 나 다름없는 실력이었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어렴풋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학원을 다니고, 두 번째 수능이 끝나고도 학원을 다녔다.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없었다. 선생님은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앉아 세네 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게 한심하고 바보처럼 느껴졌다. 달라지지 않는 내 실력에 깜깜함도 들었다. 미술학원을 가는 게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자꾸 빠지고 싶어졌다. 돌아오겠다는 약속만 하고 그만뒀다.



휴학한 동안은 일주일에 한 번, 먹일러스트를 그렸다. 처음에는 먹을 사용해서 이것저것 만들어나가는 게 재밌었다. 물감과 전혀 다른 매력이 있는 먹이 좋았다. 소소하게 날 좋아해 주는 아주머니들도 귀여웠고 선생님도 좋았다. 나름 6개월 동안 했는데 뭔가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배우고 나면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구나.


그림을 그린 시간이 너무 길었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착각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 착각은 날 계속 세뇌시켰다. 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잖아. 난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고 더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평생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믿어왔는데. 인생에게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재밌는 건, 그걸 알게 된 이유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하고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이게 없으면 내 인생은 진작에 무너져버리고 말았을 거라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그게 있어서 행복하지만 비교대상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애매하게 내 사랑을 받는 것들은 괴로워지고 말았다.


그것만큼 즐겁지 않은데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만두는 게 사실은 맞는 게 아닌지 오늘도 속으로 수십 번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그걸 포기한 내가 멋지지 않다. 그래서 계속한다. 


너무 대단한 걸 하려고 하지 말자. 아주 작은 미련이라도 남아있다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그 미련조차 남지 않았을 때 떠나보내도 늦지 않다는 걸, 절대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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