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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s voice Dec 01. 2021

12. 야나두! 배울 수 있어!

이토록 솔직한 교육 이야기 1.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자연적으로는 동일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서울대 대숲에 어느 학생이 쓴 글> 


역사적으로 어떤 신분으로 태어났는가, 어떤 사람의 자손인가, 어떤 피부색을 가졌는가, 성별이 무엇인가..처럼 개인이 바꿀 수 없는 기준이 권력을 가지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개인의 사회적 위치는‘하늘’이 정하는 거라고 믿던 시대가 아주 오래 계속되었죠.‘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속담에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정해진 위치를 그대로 따라 사는 것이 인간의 건강한 질서라는 믿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노예와 노비, 일반 농민들은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고려시대 노비들이 모여 신분질서에 저항할 때 내세우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라는 거죠. 왕, 제후,(귀족), 장군, 재상이라는 지배층의 신분을 하늘이 결정한다 생각하지만(노비들의 지위도 하늘이 결정한다 생각해서 지배당하는 처지를 순응하고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는 울분이 담겨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리스 시대 플라톤이 꿈꾸었던 국가는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져있는 곳이어서 철인왕(哲人王)이라 불리는 통치자를 훈육하는 곳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중세시대 사회의 중심이었던 기독교에서도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하늘이 내린 질서에 따라서만 그 자격이 허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럽에서는 15세기 말 대항해 시대를 통해 부를 일군 도시와 시장이 발달하고, 상인들의 조합인 길드가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 사정이 점점 나아진 거죠. 또한 동쪽 아랍 세력의 방파제 역할을 해주었던 동로마 제국이 1453년에 결국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멸망하면서 로마 문화의 정수를 이어왔던 이들이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부를 일군 대부호들, 그리고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절대왕정을 수립한 왕가들은 이들을 적극 후원했습니다. 그리스 로마 철학에 정통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중세 시대를 지배했던 교회와 성직자들에 대한 비판도 활발하게 제기됩니다. 이로써 르네상스는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문화 부흥 운동으로서 자리잡게 됩니다.      


<왼쪽부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프랑스 혁명), 영국 산업혁명,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 


르네상스의 기조에서부터 출발한 문화적, 지적 쇄신은 17세기 후반 과학과 철학에서의 계몽주의를 이끌어냈고, 18세기 프랑스 혁명, 영국 산업 혁명, 미국 독립 전쟁에까지 이르는 거대한 전 세계의 변화를 낳았습니다. 과거에 믿고 따르던 신념과 가치, 세상을 바라보는 틀과 기준에 대해 저항하는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가 아주 강력하게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거죠.      


무지몽매한 인간의 이성이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신뢰하게 되면서 ‘교육’이라는 행위는 인간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실제 삶의 지위와 조건까지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인식되었습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고, 누구나 경쟁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얼마든지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배워서 남주나!’에 뛰어들었습니다. 야나두!는 한국인의 DNA를 아주 잘 담았습니다. 니가 ***을 해냈다고? (나라고 못할 줄 알아??) 야! 나도 해! 이른바 한국의 공격적 평등주의는 이렇게 교육, 그리고 교육을 통한 경쟁의 힘을 신뢰하는 사회를 잘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3boYYTIavM

이런 사회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얻고 있는지, 그리고 교육을 통한 경쟁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공정한지는 개인이나 교육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주제가 됩니다.    

  

교육을 받을 기회가 평등한가? 

이 문제의식은 교육평등론이라는 주제에 담겨있습니다. 경제발전,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 정치이념의 우수성을 증명한다 여겼던 냉전 시대 이후로 전 세계적으로 교육은 국가발전의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잘 살아보세’를 절박하게 외쳤던 한국은 말할 나위 없었겠죠. 누구나 교육받았다 말할 수 있고, 교육의 결과로 경쟁하는 바람직한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교육기회의 평등은 자꾸만, 자꾸만 요원해보였습니다. 이 정도면 평등하겠지, 그러니 공정하다 할 수 있겠지 하는 순간 또 다시 발견되는 교육기회 불평등의 증거들이 자꾸 나타났으니까요. 교육평등론은 그래서 계속 그 논의의 폭과 주제를 오늘날까지 넓혀오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경쟁한 결과는 평등한가?

이 문제의식은 교육선발론이라는 주제에 담겨있습니다. 교육받은 결과는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개인의 선발, 배치로 연결되는데요. 시험은 그렇게 개인의 계층을 결정할 수 있는, 믿어도 되는 도구일까요? 시험 성적은 개인의 능력과 같은 의미인가요? 시험을 잘 본 사람은 ‘좋은 인재’일까요? 이런 수많은 논쟁거리들이 오늘날 ‘공정성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엉켜있습니다. 하나하나 풀어서 고민한다고 정답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애초부터 인생에, 사회에 ‘정답’이라는 게 있을 거라 확신한 것 자체가 시험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생긴 부작용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다음 글들을 통해 교육기회의 평등, 그리고 시험과 선발에 대해 하나하나 썰 풀어보기로 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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