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솔직한 교육이야기 2
누구나 노력하면 얼마든지 계층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교육받을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다 말하기에는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공식적으로 지켜줘야 할 법과 제도에서 기회가 막혀있었던 거죠. 신분, 성, 종교, 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교육기회를 차별적으로 주는 법과 제도를 고쳐서 누구나 원하는 대로, 능력을 가진 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견해가 제기되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누릴 수 있느냐의 여부는 개인의 역량과 형편에 달린 것이니 엄격한 시험과 선발은 두되 법 제도 상으로 특정 집단에만 기회가 부여되고 다른 집단에는 금지되는 일은 철폐하자는 얘기입니다. 이것을 교육기회의 허용적 평등 개념이라고 합니다.
<히든 피겨스> 라는 영화... 꼭 보세요. 세상 속 시원합니다. ㅋㅋㅋ
https://www.youtube.com/watch?v=ItSUOpH4A5w
법과 제도를 정비하면 충분히 평등한 교육기회라 생각했지만, 또 다시 발견되는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경제적, 지리적, 사회적 온갖 장애요인들이 있었던 거죠. 모든 제도적 차별을 없애서 학교에 다니도록 허용한다 해도 경제적 능력이 낮은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가 어려웠고, 벽지나 외딴 섬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가 없어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외국에서 자란뒤 중도입국하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다문화/탈북 아이들이 한국의 학교 교육과정에 적응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장애요인들을 보완해주는 것이 좀 더 적극적인 평등 구현이라는 가치 아래 교육기회의 보장적 평등 개념이 활발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도록 ‘허용’하는 차원 이상으로 다니지 않을 때 행정적 집행을 시도하고, 물리적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의무’교육이라 합니다.
https://blog.naver.com/moeblog/221213878314
교육기회가 평등해졌으니 이제 충분히 교육을 통한 경쟁이 공정해졌을 거라고 믿었습니다만, 또... 또...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학교야 입학한다 쳐도 경쟁이 공정하다 말하기에는 학교의 시설, 교육 환경, 교사의 질 등 아이들이 재학하는 학교 사이에 있는 격차가 너무 심하기에 학교를 통한 성취가 개인 책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학교의 물리적 환경을 고루 끌어올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재정을 투자했습니다. 그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대규모 연구도 진행했죠.
물론 여전히 가정의 소득과 지위가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서 학교의 물리적 환경은 의미있는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가난한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여도 학교 구성원들 간 신뢰와 협력, 학업성취에 대한 열의가 고루 높다면 충분히 그를 보완할 수 있다는 연구까지 나오면서 학업성취에 대한 학교의 영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고교평준화 정책도 학교의 물리적 환경과 교육여건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가면서 진행했다면 훨씬 평등한 교육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 걸 보면 학교의 물리적 시설에 투자하는 것이 아예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는 얘기겠죠. 이렇게 교육 기회를 제대로 준다는 건, 그래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취학만이 아닌, 효과적인 학교에의 취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가치는 교육기회의 조건적 평등이라고 설명할 수 있어요.
https://theqoo.net/square/359688755
리처드와 폴라의 성취 차이는 학교에서 노력한 결과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학교의 교육여건을 최대한 비슷하게 맞춰주려 해도, 경쟁의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발생하는 격차 때문에 아무리 경쟁을 해도 차이는 계속 벌어집니다. 학교에 올 때 아이들이 메고 오는 책가방에 각기 다른 것이 들어있다는 거죠.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다른 상황과 맥락, 환경과 조건 속에서 공부를 시작합니다. 대부분 아이들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적성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기준들이죠. 리처드와 폴라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가장 불리한 요건에서 출발하는 아이들이 최대한의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출발선을 보정해주는 방식, 이른바 교육기회의 결과적 평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결승선에 다 같이 동시에 들어오게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출발선을 최대한 맞춰주자는 얘기입니다. 어짜피 그렇게 해도 출발선의 차이 때문에 생애 과정에서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최대 능력자들보다 앞서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요.
어떻게 교육기회를 제공해줄 때 그것을 공정한 경쟁이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 바로 지금까지 다룬 교육평등에 대한 논의입니다. 이 얘기는 결국 성적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도 이토록 많고 많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학업성취를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내친김에 다음 글에서는 학업성취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얼마나 다양한지,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얘기해볼까 해요. 어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까? 라는 상당히 자극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 될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