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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윤원 Nov 17. 2020

나와 같은 사람들

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한 순간도 빛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여덟 번째, 나와 같은 사람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병원에 입사한 후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분명 같은 직장에 다니는데 부서가 다르고 근무시간이 다르다 보니 만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어쩌다 하게 된 전화통화도 서로 피곤해서 짧게만 하고 끝낼 뿐이었다. 나도 그리고 그 아이도 모두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삭히고 삭히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날 문자가 한 개 왔다. 

  '00아, 나 어떻게 하지? 난 먼저 가야할 거 같아.'

  '무슨일인데?'

  난 답장을 보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저번의 나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난 친구의 집으로 당장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야, ㅁㅁㅁ!!!! 야!!! 문 열어!! 문 열라고!"

  띠리릭. 도어키가 힘없이 열렸다. 초점 없는 눈이 날 보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났다.

  "(울먹) 내가...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왜 그런 문자를 보내고 그래!!!!"


  "00아, 들어와...."

 

  집안꼴이 말이 아니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함께 살 때만 해도 항상 깔끔하게 정리하던 아이였는데. 정리정돈 되어있지 않은 집이 이미 내 친구의 마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집에는 냉기가 돌았다. 마치 영혼이 없는 사람이 살고 있는 듯이.


 "많이 춥지?" 친구가 물었다.

 "아니, 괜찮아."

 "그냥. 보일러 틀기가 싫더라구. 나같은 사람은 따뜻하게 살 자격이 없어. 매일 폐만 끼치는 거 같고. 다들 날 싫어하고. 그냥 내가 문제인 거 같아."

  

  아, 이거 내가 했던 생각이었다. 다 똑같구나. 다들 이렇게 힘들게 버티고 있었구나.

 

 "나, 부서장님 면담했어." 친구의 말이 이어졌다.

  "부서장님? 왜... 퇴사하려고...?"

  "면담했는데 못하게 하더라. 지금 내가 나가면 인력부족이라고. 환자들 죽게 둘거냐고."

   "..."

  "근데, 내가 죽을 거 같아.. 00아... 환자가 죽기 전에 내가 죽을 거 같아. 너 저 창문 보여?"

  "응..."  


  넓게 되어 있는 창문이었다. 사람 한 명은 족히 들어갈법한.

  

  "여기가 2층이잖아.... 난 알고있다? 여기서 떨어져봤자 다치기만 한다는 거. 그런데, 난 항상 그런 생각을 해. 뛰어내리고 싶다고. 해결될 일이 하나도 없는데... 적어도 내일 출근을 안 할 수만 있다면 뛰어내리고 싶어."

 

  충분히 이해되는 심정이었다. 내가 일하던 병동은 16층에 위치해있었는데, 매일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창문이 조금만 컸어도 진작에 뛰어내렸을지 모른다. 진짜 그정도로 하루하루 죽을 생각만 가득했다. 그래도 화제를 돌려야만했다. 내 친구를 이렇게 둘 수는 없었다.


 "밥은 먹었어?"

 "아니, 24시간 째 NPO 중."

 NPO. NPO라는 뜻은 음식과 물을 섭취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내 친구는 물 한 모금도 24시간 동안 먹고 있지 않았다.

  

 "밥 먹자."

  나는 후라이팬을 잡았다.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친구는 밥 한 숟갈 뜨고서는, 소리 없이 울면서 먹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언의 식사를 이어갔다.


  집에 가기 전 난 이 말을 건넸다.

  "있잖아. 난 네가 너무 내 인생에서 소중해. 다른 곳에서 소중하지 않다고 해도 나에게만큼은 네가 제일 소중해. 그러니까 그런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너랑 더 많은 곳에 함께 가고싶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실 내가 누군갈 위로할 입장이 전혀 아닌데. 나도 친구와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으면서. 그 친구에게 건네는 위로가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찌르는지. 이런 내가 과연 힘이 되긴 할까 마음졸이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난 내 친구를 지켜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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