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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윤원 Nov 18. 2020

진짜 여우처럼 살면 모든 게 해결 되는 걸까

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한 순간도 빛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열 번 째, 진짜 여우처럼 살면 모든 게 해결 되는 걸까.


  '여우'라... 사실, 난 '여우'와 참 거리가 먼 사람이다. 누군가가 나에 대한 이미지를 동물로 정의한다면 그건 '곰'일 것이다. 그냥 우직한 곰. 여우랑 곰 하니까 생각난 건데. 왜, 그 설화같은 거 있지 않은가. 설화 같은 걸 보면 항상 여우는 그렇게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누군가를 배신하거나 골탕먹거나 허례가 넘쳐나거나. 초등학생에게 '넌 여우가 되고 싶니? 곰이 되고 싶니?'하고 묻는다면, 여우가 되고싶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적어도 곰은 100일을 참아서 사람이라도 되었지.


  저번 면담의 여파가 너무 컸다. 면담에서 여우처럼 선생님들의 비위를 맞춰드리고, 알아서 도와드리고, 간식도 좀 가져오라고 하신 말씀. 우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정말 이렇게 해보지 않았으니까. 비위를 맞춰드리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으니까.


  출근하기 한 시간 전에 버스를 타고 호텔에서 파는 에그타르트를 사러 갔다. 에그타르트 50개와 선생님들의 커피도 준비했다. 아메리카노, 주스, 라떼 혹시 모를 선생님들의 취향을 모두 반영하기 위해 15잔을 사갔다. 그리고 포스트잇을 준비해 잘 가르쳐 주시고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선생님들이 나의 원동력이 된다고 썼다. 물론, 이건 여우짓이었다. 진심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날 매일 욕하는 사람들에게, 날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내 롤모델이라고 쓰고 있으니 미칠지경이었다. 마치 원수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느낌.


  이렇게 준비했는데, 그래도 사람이라면 오늘 하루만큼은 욕을 하지 않겠지. 부서장 선생님께 갔다. 내가 사온 것들을 모두 컨펌받았다. 부서장님은 괜찮은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음료와 간식을 세팅하고, 선생님들을 기다렸다. 선생님들의 취향에 맞춰서 음료를 가져다 드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선생님들이 병동으로 들어오셨다.


  후... 후... 난 숨을 두 번 들이쉬고 도레미파솔 솔 톤으로 인사하기 위해 다가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뭐야... 내가 너 덩치 커서 위협적이니까 가까이 오지 말랬지?" 저번에 내 외모 가지고 뭐라하시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럴만도 했다. 내가 키가 170이 넘는데 선생님은 150도 안되는 키를 가지셨으니까. 내 눈을 보려면 목을 꺾으셔야 하는데 얼마나 힘이 드셨겠는가. 난 내 자신을 한 번 더 여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한 발짝 뒤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당황) 너 왜이래? 뭐 잘못 먹었어?"

  "아니요, 저 괜찮습니다. 선생님. 안에 음료수랑 간식 준비했는데 일하시기 전에 드세요."

  "네가 준비했다고?"

  "네! 선생님들께서 잘 가르쳐주셔서 제가 너무 감사해서 준비했습니다."

  "(당황) 감사하다고?"

  

  당연히 아니었다. 감사하지 않았다. 날 부려먹기만 하셨던 분이었다. 자신의 일은 모두 나에게 떠넘기셨다. 입원관리랑 퇴원관리. 혈당체크랑 약품관리까지 모두 나.에.게. 내가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셨다. 그럼에도 난 웃어야 했다. 난 여우다. 난 여우다. 최면을 걸었다.


 "그런데, 어쩌지? 난 별로 먹고싶지가 않은데? 내가 사다달라고 한 적도 없잖아?"

 "네?"

 "아니 그렇잖아. 네가 언제 우리한테 물어보고 사왔니? 우리 방금 다같이 카페갔다 오는 길이야. 넌 톡방에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아..."


  톡방에 내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부서장님이 간식을 준비해오라고 하셔서 준비해봤던 거였는데. 그 톡방에는 부서장님도 안계신 톡방인가보다. 출근 전에 같이 밥먹고 카페에 다녀오시는지 정말 몰랐다. 그 무리는 참 견고해보였다. 내가 절대 들어갈 수 없을 거 같은 그런 곳.


  그리고 정말 사실이었다. 내가 사온 커피와 에그타르트에는 선생님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커피 얼음들이 녹으면서 책상에 물이 흥건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내 마음이 녹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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