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윤원 Nov 18. 2020

사실은 그 위대한 누군가도 결국엔 험담의 대상이었다

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단 한 순간도 빛나지 않던 적이 없다.

열 한 번째, 사실은 그 위대한 누군가도 결국엔 험담의 대상이었다.



  병동 일에 어느정도 적응을 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이제 누가 나를 욕해도 그러려니했다. 어차피 욕하시느라 목만 아프시겠다 싶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스킬을 사용했다. 그렇게 나에 대한 험담을 귀로 막아보니 알게 되었다. 나만 사람들이 욕하는게 아니었다는거. 그냥 다들 서로를 욕하고 있었다. 


나에게 2년차 선생님이

"야! 내가 너 때문에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알아?"


 그 2년차 선생님에게 10년차 선생님이.

 "쟤는 왜 아직도 어리바리한 거야? 이정도 되면 자기가 알아서 그만둬야 하는거 아니야?"

 

 그 10년차 선생님에게 15년차 선생님이.

"쟤는 왜 저렇게 성격이 센지 모르겠어. 일만 다하고 그냥 휙 가버리잖아. 여하튼 연차 좀 쌓였다고..."


그 15년차 선생님을 5년차 선생님이.

 "솔직히 조금 꼰대 기질이 있으시긴 하지. 뭐든지 자신에게 맞추길 바라시거든. 아니, 시대가 변했으면 선생님이 변하셔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컴퓨터로 안하고 수기로 하래?"


그냥 험담의 대상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그 자리에 없으면 욕하는 곳.

물론 신규는 예외였다. 신규는 그 자리에 있던 없던 그냥 앞담이든 뒷담이든 그냥 들어야 하는 곳이었다.


나보다 한 달 먼저 입사했던 병동 입사동기가 오늘 나에게 퇴사한다고 말했다. 이 척박한 곳에서 입사동기는 한줄기 빛이었는데 그녀가 퇴사한다고 말하니까 너무 무서웠다.


"00선생님. 잘 있어요. 저는 여기 더이상 못버티겠어요. 전 다른 병원에 이미 입사 원서 넣었어요. 여긴 더 있을 곳이 아니에요."

"선생님이 가버리시면 저는 어떻게 해요. 선생님 덕분에 그나마 버티고 있었던 거였는데...."

"미안해요. 그런데 난 진짜 여기 잘못된 곳이라고 생각해요. 인력이 부족하면 자신들만 힘들텐데 왜 그렇게 신규들을 힘들게 하는 걸까요? 아마 우리가 다 나가버리면 휴가도 못갈텐데 말이죠."

"...."

"저는 최고의 복수가 그 분들이 쉬지 못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 없으면 분명 인력 구멍 생길거고. 분명 바빠져서 병동인력 충원오겠죠. 여기 병동사람들 다른 곳에 말 새어나갈까 다른 사람들 오는 거 싫어하잖아요. 평소처럼 뒷담 못하니까."

"그... 그렇죠..."

"아마 병동인력 충원오면 선생님 사정도 조금 나아질 거에요. 다른 사람들이 좀 들어와야 이 고인물도 해결될테니까. 전 다음주에 퇴사하기로 결정되었어요. 00선생님. 잘 있어요."


그렇게 내 소중한 입사동기가 나가게 되었다. 정말 그녀의 말처럼 새로운 인력들이 다른 병동에서 오기 시작했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 모두 새로운 인력들이 와서 우리병동의 일을 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험담이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라 그런지. 하긴 모르는 사람들끼리 초면에 욕은 하지 않겠지. 진짜 편안했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욕을 먹지 않는 날이었다.


그렇게 내 소중한 동기가 나간 후에 새로운 동기가 들어오게 되었다. 새로운 동기에게 난 정말 잘 해주고 싶었다. 나는 새로운 동기가 입사한 지 2주차가 되던 날, 밥약속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전 여기에 5개월 전에 입사했어요. 혹시 궁금하시거나 어려운 일 있으시면 저에게 물어봐주세요."

"아아... 네..."


새로운 동기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아...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아 그건 아니에요. 그냥. 00선생님이 조금..."

"네? 무슨...?"

"아, 입사 첫 날에 트레이닝 받는데 00선생님을 다른 선생님들이 험담하시더라구요. 지금 5개월차 아니세요? 5개월차인데 적응 못하신거 같길래요."

"네?"

"아니요. 그냥 일 제대로 하지도 못하시는 거 같은데. 궁금한 거 있음 물어보라고 하셔서요."


아아, 난 자격도 없는데 궁금한 거 물어보라고 했다고 그런건가. 내가 당황하고 있는데 새로운 동기가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5개월 먼저 입사하셨지만 어찌되었든 저희 병원은 일년을 주기로 입사동기로 보잖아요. 저와 00선생님은 입사동기고 저에게 가르쳐 주셔야 할 부분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아... 네... 제가 오지랖을 부렸네요..."


속이 부글부글했다. 입사동기는 내 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아니라니. 요즘 어쩐지 편안하다고 했다. 친구로서 지내자고 편안하게 지내자고 하고 싶었는데. 역시 사회는 학교와 다르다는 것을 또 한번 체감했다. 


"00선생님. 00선생님을 다른 선생님들이 뭐라고 하시는지 제가 알려드릴까요?"

"아니요.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 사람들 5개월 째 내 앞에서 앞담중인데 내가 그 내용을 모를리가 있는가. 굳이 친절하게 이걸 설명해주겠다고? 그것도 동기가? 아, 진짜 그건 아니었다.


"아니, 이건 알고계셔야죠. 그래야 고치죠.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냐면요...."

"선생님. 미안해요. 제가 급한 일이 생각나서요. 다음에 병동에서 봐요."

"아, 급한 일 있으세요? 네, 그럼 다음에 봐요."


정말 듣기 싫어서 자리에서 빨리 일어났다. 사실 나도 할 말은 많았다. 그거 알고 있니? 넌 이제 2주 되었지만 내가 5개월치 욕먹은 것 보다 네가 더 많이 먹고 있어. 라고 하고싶었다. 하, 꾹꾹 참고 말 안했다. 상처받을까봐. 


선배들만 날 힘들게 할 줄 알았는데 동기까지. 이제 이 동기와는 밥약속을 두 번 다시 잡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매일, 매주, 매달 가야 하는 곳에 마음맞는 사람 한 명 없다니. 다시 한 번 사회는 서글픈 곳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진짜 여우처럼 살면 모든 게 해결 되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