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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윤원 Nov 19. 2020

눈이 두 개인 이유는 양 쪽의 눈치를 봐야해서인가

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한 순간도 빛나지 않던 적이 없다. 

열 두 번째, 눈이 두 개인 이유는 양 쪽의 눈치를 봐야해서인가



내가 근무하던 병동은 인력이 부족해 근무일정이 3일도 안되어서 계속 엎치락 뒷치락 바뀌고 있었다. 나같은 신규는 당연히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내일 일정을 그 전날에 확인해야 했다. 다음 일정이 데이인것을 확인하고 퇴근을 했다.


그 다음 날. 어제 오후 5시에 퇴근을 하고, 오늘 새벽4시에 출근하는 길이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일찍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이트 교대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드리러갔다. 그리고 1시간 동안 선배 선생님들의 약품준비와 물품준비를 대신했다. 인계시간이 다 되어 인계를 받으러 가는데 한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셨다.


"야!! 네가 여기 왜 있어?"

"저 오늘 데이 근무라서 일찍 출근했습니다."

"어제 밤에 일정 바뀐 거 몰라? 카톡공지했잖아!"


수근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선생님이 그 선생님에게 말했다.

 "(속닥속닥) 쟤 단톡방에 없어요 선생님."


분명히 병동 공식 단톡방에는 내가 있었다. 친목 단톡방에 내가 없을 뿐. 선배선생님들끼리 내 근무일정을 마음대로 바꾸시곤 자신들만 있는 친목 단톡방에 공지한 것이다.


하, 이것도 내탓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황) 네가 알아서 눈치껏 선생님들에게 물어봐야지!"


네, 단톡방에도 안끼워주시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그것도 바뀐지도 몰랐던 일정을 여쭤보겠습니까. 마음속으로 억울해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또 한번 소리치셨다.


"누가 내 약들 정리해놓으래?"


어제 선생님께서 알아서 막내가 약 정리해놓으라면서요. 아, 설마.


역시나. 부서장님이 출근하셨다. 부서장님은 약정리를 신규에게 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각자 알아서 약을 정리하라고 병동회의 때 못박으셨지만 부서장님이 퇴근해버리시면 그건 무용지물이었다. 신규인 나는 부서장님이 없으신 틈을 타서 선배선생님들의 약을 눈치껏 정리해놓아야했다. 부서장님 눈치 따로 선배님들 눈치 따로. 눈은 한 곳만 바라볼 수 있는데 사회생활은 내가 양쪽 다 바라보기를 바랬다.


나에게 소리지르시던 선생님이 늦게 출근한 것을 아는데 이미 약정리가 되어있는 걸 부서장님이 보셨나보다. 그 선생님이 10분만 일찍 출근하셨어도 내가 대신 약정리 했다는 걸 부서장님이 모르셨을텐데... 그 선생님은 부서장님에게 호출당하셨다. 약 5분 간의 대화 후, 부서장실에서 나온 선생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다음 번에 내꺼 미리 정리해놓으면 혼날 줄 알아!"


아, 진짜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세상이었다. 내꺼 제대로 하기에도 바쁜데 눈치까지 봐야하는.


"네, 선생님...." 이래놓고 다음에 부서장님 없을 때는 왜 정리 안했냐고 화내시겠지. 


그리고 나도 부서장님에게 호출당했다.

"00아, 너 왜 네가 선배들꺼까지 약 정리했니? 내가 분명히 저번에 약 정리는 본인이 알아서 하라고 했을텐데! 네가 그렇게 규율을 어겨버리면 내가 뭐가 된다고 생각하니?"


"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부서장님. 부서장님이 퇴근하신 오후 4시 이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모든 허드렛일을 신규가 해야만 해요. 안그러면 다른 선배 선생님들께서 신규에게 눈치없다고 욕하고, 일을 가르쳐주시지 않아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넌 그런데 왜 일찍 출근한거야? 데이가 아니라 이브닝 근무라며!"

"아아, 제가 확인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바뀐지 몰랐어요. 이브닝 시간에 맞춰서 3시간 후에 다시 출근하겠습니다."

"그래, 그 때 보자."


다시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나왔다. 집에 다녀오면 왔다갔다 한 시간일거고. 출근을 두 번해야 하는 날이라니. 일찍 출근했다고 혼나고. 나도 모르는 일정을 정말 몰라서 혼나고. 하라고 하는 일 했다고 혼나고. 


난 내 두 눈으로 한 쪽만 바라보고 일하고 싶었다. 눈이 2개라고 해서 양쪽을 모두 바라볼 수는 없는데.... 내 눈이 두 개인 이유가 양쪽의 눈치를 봐야 해서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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