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한 순간도 빛나지 않던 적이 없다.
열 여덟 번째, 직장이란 무얼까. 밥벌이란 무얼까. 무엇이기에 날 이렇게 짓밟을까.
3일의 유예기간이 빠르게 흘렀다. 흠, 그 3일간 무엇을 했냐고 내게 묻는다면 첫째날은 자고 일어났더니 사라져있었고 둘 째 날은 밀렸던 집안일을 하니 사라져있었고 셋 째날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오니 사라졌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다짐했지만, 내가 정말로 이 회사를 퇴사할 것인지, 아니면 철판을 깔고 다시 회사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해야해서 계속 불안해하며 지냈다. 3일이면 병동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퇴사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시간이었다.
쉬고나니까 더더욱 병동에 돌아가고싶지가 않았다. 가면 또 어떤 욕을 들을까. 일에 대한 힘듦보다 그들이 내뱉을 말 하나하나가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시간은 흘렀고, 난 선택을 해야했다.
부장님이 물으셨다.
"그래, 좀 나아졌니? 복귀는 언제 가능해?"
내가 당연히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하신 부장님의 첫 말씀이었다.
"부장님, 저는 복귀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사직하러 왔습니다."
"너 후회할 일 하지마라. 다른 사람들은 이 직장에 다니고 싶어도 못다녀! 여기서 못버티고 나갔다고 소문이라도 돌면 다른 곳에서 널 받아줄 거 같니? 아니, 절대 안받아줄걸? 이정도도 못버티는 사람을 누가 써줄거라고 생각하니?"
부장님의 위에 계신 간호팀장님과도 마지막 사직면담을 진행했다.
"네가 00대학교 나왔으니까 그나마 우리 병원에서 받아준거야. 너 우리 의료재단이 얼마나 큰지 알지? 네가 퇴사하고 이곳과 관련된 어떤 곳에서도 일을 할 수 없을 거야. 이 쪽 계통에 발도 붙일 생각하지 마라. 여기 퇴사기록 있으면 아무도 너를 안써줄테니까!"
상관없었다. 난 내가 더 중요했다. 지금 이상태에서 일을 더 하게 되면, 난 내 삶을 포기할 거 같았다.
내 상사이신 아니 상사이셨던 두 분은 나에게 이렇게 마지막 협박을 하시고는 사직서에 도장을 찍어주셨다.
모든 것을 끝내고 이 곳을 나오고 나니 참 후련했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빠, 저 퇴사했어요."
"지금껏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서 취직시켰더니 1년도 못버티니. 경력은 적어도 3년은 쌓아야 다른 사람들이 너를 봐준다고 참으라고 했잖아!"
"어쩔 수 없었어요. 아빠. 아빠 딸이 당장 없어지는 것보다 나아서 한 선택이에요."
"그 정도도 못버티면 다른데서는 어떻게 하려고! 또 신입으로 들어가서 고생할래? 그것도 못버티면 죽는게 나아! 어찌되었든 난 해줄 수 있는 건 다했어! 앞으로는 네가 알아서 돈벌어서 알아서 살아!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고!"
"네, 죄송해요."
"엄마, 저 퇴사했어요."
"아빠한테 들었다. 안그래도 아빠 정년퇴직 가까워지셔서 심란하신데 전화를 왜했어."
"그래도 상황을 말씀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해서요."
"앞으로 네가 홀로서야 한다. 집에서도 너 더이상 지원 못해줘. 아빠 화 풀리시기 전까지 최대한 집에 전화하지 말고."
참, 직장이란 무얼까. 그리고 밥벌이란 무얼까. 무엇이기에 내 자존감을 짓밟고, 앞으로의 내 미래를 짓밟고, 부모님과의 관계를 짓밟는 걸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돈이라는게 그렇게 무서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