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우선 제목을 보고 거창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들어오신 분들께 사과를 드리고 싶다. 난 퇴사를 하고 한 달동안 침대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동안 몸이 많이 상했는지 일어서서 걸을 힘조차 없었다. 3일간 누워있다가 열이 계속 나자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왔다. 아파서 잠에 들었다가 눈을 뜨면 약을 먹었고, 약에 취해 잠에 들었다가 눈을 뜨면 약을 먹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래도 눈 뜬 시간은 있지 않았냐고? 맞다. 있었다. 눈 뜬 시간동안은 티비를 봤다. 그동안 못봤던 예능프로그램들을 보기 시작했다. 신서유기도 보고 런닝맨도 봤다. 학생일 때 제일 좋아하던 프로그램들인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재미없었다. 분명 보고는 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혀 집중을 못하고 그냥 그들이 떠드는 목소리를 넋놓고 듣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니 티비의 강호동님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호동님이 예능에서 큰소리로 말하는데 순간 내 마음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트라우마처럼.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큰소리로 나에게 뭐라고 하시던 선배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빨라졌다.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상황들이 계속 내 머릿속에서 리와인드했다.
'너만 잘했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네가 잘못했잖아. 네가 뭔데 여길 그만둬. 넌 다시 이 계통에 발도 못붙일 줄 알아.'
이제 나에게 이렇게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데 계속 마음이 우울해지고, 내가 퇴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더해졌다. 밥을 먹으면서도 눈물을 계속 흘렸고, 꿈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혼나고 있었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핸드폰을 열었다. 그들과 함께 있었던 카톡방은 이미 나온지 오래였지만, 카톡에서 글자로 혼나던 그 느낌과 잔상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카톡의 노란색 색깔도 보기 싫어 어플 자체를 지웠다.
퇴사를 했으면 후련함과 시원함 뿐일 줄 알았는데 죄책감이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 줄 몰랐다.
하루하루, 힘들어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00이니? 나 ㅁㅁㅁ 교수야."
간호대학 교수님이었다.
"네가 퇴사했다는 소식 들었다. 우리학교 출신이 빨리 퇴사하면, 네 후배들에게 영향 미친다고 했잖니. 그 병원에서 우리학교 출신들을 안뽑으면 어떡해. 조금 더 있어보지 그랬어."
"죄송합니다. 교수님."
내가 죄송하다고 해야 할 사람이 남아있었다. 내 퇴사결정 한 번에 난 이렇게 점점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00아, 너 간호사 계속 할 생각 없니?"
"아직은, 조금 쉬고 싶어서요."
"네가 학교로 돌아와서 이것 좀 도와주었으면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도, 난 네 성적이 아깝다.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서....이렇게 실패했다는게...."
난 퇴사했다고 학교에 알린 적이 없는데.... 누가 알린건지 이미 다들 내 퇴사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퇴사결정이 인생의 실패인 것처럼 여기는 말들이 나를 아프게 찔렀다.
'그래, 나 진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어. 이건 그냥 내가 운이 나빴던 거 뿐이야. 진정하자.'
교수님과 전화를 끊은 후, 정신이 들었다. 난 그들의 말처럼 실패한 인생을 살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침대를 벗어나 내 주위를 살펴보았다.바닥에 쌓인 먼지들, 마구잡이로 펼쳐진 옷들, 정리되지 않은 책들, 배달음식의 잔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