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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윤원 Nov 13. 2020

난 나의 생을 포기하려 했다

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한 순간도 빛나지 않던 순간이 없다.

일곱 번째, 난 나의 생을 포기하려 했다.



  새벽 2시, 퇴근을 하는데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버스가 끊긴 시간. 집에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택시기사님은 애매한 거리라며 잘 태워주시지 않았다. 걸어가기에 애매한 거리, 애매한 시간. 그 애매함들이 내가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새벽 4시까지 기다렸다가 첫 차를 타고 집에 갈까. 그냥 막연하게 병원 앞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횡단보도 위에 서 있고 싶어졌다. 내가 다니던 병원 앞에는 엄청 큰 교차로 차선이 있었다. 그 차선의 한 가운데에 서있어보고 싶었다. 새벽 3시, 초록색 불로 바뀌자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운데에 멈춰섰다. 초록색불은 계속 깜빡이며 나보고 얼른 지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내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내가 여기서 죽어버린다면 내일 출근을 안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 죽어서 출근을 못한다고해도 그 사람들은 좋은 말을 해줄 것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적어도 내일의 고통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빠아아아아아앙! 경적 소리가 내 앞을 스쳤다.


  나는 빨간불로 바뀐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정말로 횡단보도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내가 바라던대로였다. 아, 그런데 무서웠다. 그래도 죽고싶지는 않았다. 아프고 싶지도 않았다. 빨리 차를 피해야했다. 마음에 비해 내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 발 내딛는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교차로 옆 버스정류장 도보로 차를 피했다. 새벽 3시라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새벽 3시에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벽 4시 30분. 첫 차를 타고 집에 들어갔다.


  다음날 오전 10시, 눈이 떠졌다. 공부를 하러 의학도서관을 가야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길을 나섰고 다시 한 번 어제의 그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게 되었다.  어제의 힘들었던 감정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도 저렇게 웃으면서 밝게 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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