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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윤원 Nov 13. 2020

삶이 정직한 그대를 속일지라도

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단 한 번도 빛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여섯 번째, 삶이 정직한 그대를 속일지라도


  내가 사회를 경험하기 전, 아직 학교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 세상 최고의 가치는 '정직'이라고 생각했다. 난 내 자신이 늘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례로 중간고사에서 맞았다고 잘못 채점된 시험지조차도 틀린 것이라며 정정을 요구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정직'이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내 등급과 점수도 포기할 수 있었다. 이렇듯 나에 대한 '정직'의 기준이 높듯, 남에 대한 '정직'의 기준도 높았다. 내가 솔직하고 정직하면 남도 나에게 정직하게 대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병동에는 마약장이라는 곳이 있다. 철제로 된 이중금고로 단단히 잠궈두고 마약을 보관한다. 항암병동에서 주로 사용하는 마약은 진통제이다. 암으로 인한 통증이 상당하기 때문에 항암병동에서는 늘 일정 개수의 진통제를 마약장에 상비해두고 PRN으로 진통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여기서 PRN이란, '필요 시 투여'를 의미한다.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진통제를 요구할 경우, 의사의 처방 없이 바로 진통제를 투여할 수 있다. 환자마다 하루에 투여할 수 있는 진통제 양이 제한되어 있기에 간호사는 늘 투여개수를 확인하고 간호기록을 꼭 남겨 놓아야 한다. 그리고 마약을 투여한 다음에는 약국에 전화해 약을 신청해야 한다. 항상 일정 개수의 마약이 병동에 있을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병동에 고령의 환자분이 입원했다. 환자분이 할 수 있는 의사소통은 '아프다'와 '약이 필요하다' 딱 이 두마디였다. 나는 환자분이 아프다고 하실 때마다 복용 시간을 계산해서 투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복용횟수를 철저하게 확인하고 간호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내 간호기록을 본 내 다음 인계였던 선생님이 나를 호출하셨다.


 "000, 너 진통제 몇 개 투여한 건지 제대로 쓴 거 맞아?"

 "네, 제가 2번 투여했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왜 마약장에는 하나도 안남았어?"


  우리 병동의 마약장에는 3개의 진통제가 항상 있어야 한다. 두 개를 내가 썼으니까 당연히 한 개가 남아있어야 했다. 그런데 한 개가 없었다. 분명히 내가 두 개를 투여를 했으니 한 개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000, 네가 마약 숨겼니? 범죄자 되고 싶어?"

  순간 울컥했지만, 나는 똑바로 말씀드리기로 했다.

  "선생님, 전 분명히 두 개 투여했습니다."

  "네가 헷갈린 거 아니고? 세 개 투여해놓고 두 개 투여했다고 쓴 거 아니야? 당장 환자분께 가서 물어봐!"

 

  환자분에게 갔지만 고령의 환자분과 보호자분은 몇 개의 진통제를 투여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셨다.

  

  나는 내가 쓴 쓰레기통을 뒤졌다. 분명 마약 진통제 약봉투는 두 개 뿐이었다. 이전 인계시간의 투여기록을 다시 살펴보았다. 이전 인계시간 때 선생님은 새벽에 마약 한 개를 사용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약국에 신청해서 한 개가 오후 즈음에 병동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오후 1시이니까 약국에서 한 개의 마약이 병동으로 왔어야 할 시간이었다.


  난 약국에 전화를 걸었다. 약사 선생님은 신청목록에 우리 병동이 없다고 하셨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이전 인계 선생님이 약국에 약 신청을 안해놓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병동 마약장에는 마약이 없었다. 난 서둘러 약을 신청하고, 나에게 범죄자가 되고싶냐고 하셨던 선생님께 찾아갔다.


 "선생님."

 "그래, 어떻게 할 거야? 네가 마약을 만들어올 거야? 어디서 가져올거야? 어떻게 할 건지 얘기해 봐!"

 "이전 인계 선생님께서 약국에 마약 신청을 안해놓으셨습니다. 제가 인계받을 때는 분명히 신청하셨다고 들었는데, 깜빡하신 거 같아요. 약국에 전화를 했더니 병동으로 약 올린다고 하셨습니다."

".... (당황) 어찌되었든, 내가 인계받기 전에 네가 개수 정확하게 확인해야지!"

  내 이전 인계 선생님은 경력 15년차의 베태랑 선생님이셨다. 이 선생님이 실수를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 네. 제가 약 신청목록을 다시 확인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옆에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이 다가왔다. 

  "왜, 000이 마약 숨긴 거 맞대?"

  "아니, 이전 인계 선생님이 약 신청을 안해놓아서 병동에 없었던 거래. 지금 약 올라오는 중이래."

  "쟤는 그것도 확인 안했대?ㅋㅋㅋㅋ 쟤는 꿈이 범죄자래?ㅋㅋㅋㅋ"


  아, 이건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실 거다. 범죄자... 그래 농담으로 하신 걸거다... 라고 생각했지만 내 머릿속은 터지기 시작했다. 난 마약을 숨기지 않았다. 난 정확하게 약을 개수에 맞게 투여하고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병동에서는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은 난 고개를 숙여야했다. 그리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했다.


  퇴근을 하려는데 약을 신청하지 않는 실수를 하셨던 이전 인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000, 넌 내가 실수했다고 동네방네 말하고 다녔더라? 그냥 네가 알아서 넘어가 줄 수는 없었니? 막내면 막내답게 눈치껏 굴었어야지. 그걸 선생님들에게 올곧게 말하는 애가 어딨어?"

  "..... 네, 죄송합니다. 선생님."

  "하여튼 너는 정이 안 가. 정이."

  "죄송합니다."


   아아, 사과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냥 실수를 인정해주시길 바랐다. 아, 그것도 너무 큰 거 였다. 난 남들도 나처럼 정직하길 바랐다. 누군가는 나를 범죄자 취급까지 할 정도였는데.... 내가 이전 인계선생님의 실수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정말 내가 범죄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 때 생각했다.

  

   '내가 정직하게 행동한다고 남이 정직하게 행동하길 바라서는 안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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