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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윤원 Nov 13. 2020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단 한번도 빛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다섯 번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이 병동에서 내가 5개월 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프리셉터(멘토) 선생님 덕분이었다. 선생님은 천사로 불렸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신임받고 참된 간호사상으로 여겨지는 분이었다. 모두들 내가 이 선생님의 프리셉티(멘티)가 된 것을 부러워했다.


  천사 선생님은 나에게도 천사였다. 늘 친절한 말투로 하나하나 세심하게 알려주셨다. 내가 못하더라도 잘 해낼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선생님께 늘 감사했고 어서 뛰어난 간호사가 되어서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있어 이 병동의 빛이었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내가 다른 선생님들에게 욕먹을수록 천사 선생님도 욕을 먹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선생님이 나를 잘못 트레이닝해서라고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너무 죄송해서 어떻게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포스트잇 세 장에 죄송하다는 말만 가득담아 건네드렸다. 나도 이런 내가 싫었고 나 때문에 욕먹는 선생님을 보는 것도 싫었다.


  나에 대한 욕이 더 심해질수록 천사 선생님과 나의 사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천사 선생님은 나에게 아무 말씀 안하셨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선생님도 나를 가르치느라 지쳤다는 것. 나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 이상하게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보다 선생님의 기대를 받지 못한다는게 더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일 새벽 2시에 퇴근을 하면 하는 일과가 있었다. 바로 부모님께 전화 드리는 것. 취직을 한 후 나홀로 상경해서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부모님은 늘 나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다. 그래서 새벽 2시까지 항상 내 전화를 기다리셨다. 


  처음엔 부모님에게 많이 의지했다. 오늘 힘들었던 일, 마음 아팠던 일 그리고 어쩌다 생긴 좋은 일. 나의 모든 일을 부모님과 공유했다. 하지만, 한 달 한 달이 지날수록 부모님은 많이 힘들어하셨다. 아침에 출근하셔야 하는데 딸의 전화를 받느라 늘 수면시간이 부족하셨고, 내 전화를 못받으시는 날도 많았다.


  난 부모님의 사정을 고려하지 못했었다. 아니, 생각조차 못했다. 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불행한 상황이라고 생각했기에 점점 짜증이 늘어만 갔다. 당연히 전화통화 내용은 좋은 내용이 없었다. 어느날 엄마가 물어보셨다.

  "정말로 좋은 일이 하나도 없는 거니? 직장은 힘든 곳이지만 싫은 일만 있는 곳은 아니란다. 너의 마음가짐을 조금 바꾸면 좋은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거야."

 "엄마, 정말 이런 환경 속에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원래 처음은 힘든 법이야. 처음이라서 겪는 성장통인거야.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렴."

 "엄마는 간호사로 일해보신 적 없잖아요. 내가 어떤 상황인지 실제로 겪어보지 못했으면서.... 내가 얼마나 욕먹는 상황인지 모르면서...." 나는 전화통화를 하면서 계속 울먹였다. 


  "나도 너무 지쳐. 새벽마다 네가 우는 목소리 듣는 것도 싫고, 네가 불행하다고 하는 소리 듣기도 싫어. 네가 나에게 너무 의지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 이건 네가 겪어야 할 성장통이야. 네가 이겨내야만 해."

  분명 엄마는 내가 잘되길 바라셔서 하는 말씀이었다. 지금같은 이성적인 상황에서 들었을 때, 엄마가 나에게 해주신 걱정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듣지 못했다. 정신이 반 쯤 나가있는 상태에서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엄마조차도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내 편이 정말 한 명도, 단 한 명도 없구나.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구나.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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