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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윤원 Nov 12. 2020

모두가 나를 욕한다

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단 한번도 빛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네 번째, 모두가 나를 욕한다.



  출근하면 우선 내 욕과 험담부터 들렸다. 이걸 바로 앞담이라고 하지. 아니 뒷담같은 앞담인가. 어제 내가 실수한 것들, 내 외모는 언제나 병동의 재밌는 가십거리였다.

 '어제 또 실수했다며? 쟤는 어떻게 아직도 적응을 못하지? 머리 아이큐가 나쁜 거 아니야??ㅋㅋㅋ'

 '하고다니는 꼴도 좀 봐. 안경 쓰고 다니잖아. 신규면서 파릇파릇한 느낌이 없어 쟤는. 다른 병동 신규들은 다 예쁘게 하고 다닌다던데.'

 '전 키 큰 게 마음에 안들어요. 어찌나 큰지 막 돌아다니는게 다 보여. 눈에 거슬린다니까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실수가 아니었는데... 잠을 제대로 못자니까 충혈되어서 안경 쓴 건데.... 키 큰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건데... 아 그냥 나는 태어나면 안되는 존재였나. 이렇게 민폐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만 끼치는 사람이었나. 그렇게 나는 내 자신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계속 마음을 다잡았다.


  한달에 공식적으로 쉴 수 있게 해주는 휴무일은 9일이었다. 하지만, 9일 중 3일은 교육과 회식에 사용해야 했다. 내일이 쉬는 날이라는 걸 알면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일부러 나를 교육에 부른 선배 선생님도 있었다. 쉬는 도중 갑자기 전화로 받게 된 부서장님의 호출. 오늘 시간이 되니까 밥과 술을 먹자고 하셨다. 난 쉬고 싶었지만 가야했다. 어색한 침묵 속의 식사가 이어졌다. 나보고 일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할 거냐고 물으셨다. 나는 아직은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대학원은 가야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난 주관이 없는 사람이라며 왜 그렇게 사냐고 하셨다. 이렇게 동문서답이 가득한 회식이었다. 


  이렇게 제대로 쉬지 못하고 추가근무는 계속되다보니 체력은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표정도 밝지 못했고, 하루종일 우울했다. 부서장님이 퇴근하신 틈을 타 두 번째로 높으신 선생님이 나를 호출하셨다. 내가 예의가 없다고 하셨다. 인사를 조금 더 숙여서 하라고 하셨다. 같이 근무하는 25명의 선생님들을 한 분 한 분 찾아가 인사를 크게 90도로 하라고 하셨다. 모든 선생님들이 다 나를 욕하고 있는데 이 상황 알고 있냐고 물으셨다. 그 때 처음으로 직장에서 눈물이 났다. 이미 위축될대로 위축되어 있는데 이미 욕하는 거 다 듣고 있는데 욕하는 상황을 인지하냐고 물으시니까. 계속 눈물이 흐르는데 나보고 말씀하셨다. 넌 눈물 흘릴 자격조차 없다고.


  내가 애를 쓰고 노력해도 결국은 욕먹고 혼났다. 그래서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눈물을 멈추고 진정할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 시간에도 환자분들은 입원을 해야 했고 퇴원을 해야 했으니까.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물 마실 시간도 안주는 곳에서 내가 눈물 흘릴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사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따로 혼났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아부를 안한 것. 한 선생님께서 내가 불쌍했는지 팁을 주셨다. 아부를 한 번 해보라고. 답은 그거였다. 아부. 아부 몇 마디에 나를 혼냈던 선생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너의 태도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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