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아이가 장애라고 하면 충격을 받는다. 대부분 내 아이에게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고, 일어날 리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들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 마냥 수년간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게 되며 많은 양육자들이 정신적인 질환 (우울증, 공황장애 등)을 겪게 된다. 상당한 기간 동안 혼란, 갈등, 고뇌, 죄책감, 번민, 우울, 분노, 좌절 등 온갖 감정에 시달리게 되고 장애아이의 치료에 매달려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소홀해지기도 하며 부와 모의 장애에 대한 입장이 달라 이혼까지 가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나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술이나 치료로 완치되는 병과 달리 평생 안고가야 하는 아이의 핸디캡을 마주한 순간 미래의 희망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나의 가정, 나의 삶 전체가 흔들렸다. 임신 전, 중, 후 내가 했던, 보았던, 말했던, 먹었던 수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를 질책하며 눈물을 흘리는 시간들을 겪었다. 살아오면서 주어진 일에 충실해왔던 나의 모범적이라면 모범적이던 삶이 한순간에 부정당한 듯한 느낌, 온전한 정신으로는 밀려오는 수많은 감정들을 버텨내기 힘들다 못해 에너지가 바닥나버려 마이너스 통장 쓰듯이 있지도 않은 에너지를 박박 긁어 써야만 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지진해일도 버티기 힘든데, 외부로부터의 악의 없는 공격들은 화살이 되어 심장을 찔러왔다. 친척들의 친구들의 지인들의 아무것도 아닌, 그저 인사치례로 하는 말 한마디에도 나는 속절없이 쓰러졌다. 매스컴에서는 장애아 출산의 위험이 있다며 임산부가 조심해야 될 것들을 강조했고 환경오염이나 약물부작용 등 세상의 온갖 부정적인 것들은 모두 장애아와 연결되어 있었다. 세상 몹쓸 존재이고 절대 탄생해서는 안 될 존재인 나의 아이. 나는 사회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나의 아이가 부정당하는 현실을 온몸으로 버텨내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은 괜찮나요?
라고 묻는다면 완전히 괜찮죠! 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에 ‘완전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간 지진해일을 견뎌내는 둑도 쌓고 내진설계 보강해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그럭저럭'이 되기까지 꽤 오랜 기간이 걸리고 많은 고통을 겪었기에 고작 한 단어로 표현하니 손목에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럭저럭'까지 온 나를 혼잣말로 칭찬해주며 맘을 달래본다. :)
두 사람이 이유없이 감옥이 갇혔다. 한 사람은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더 이상 자유를 느끼지 못함에 좌절하고 절망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나만의 시간을 이용해 글도 쓰고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며 보낸다. 한사람은 감옥에 갇혀있는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고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하며 다른 한 사람은 비록 감옥에 있지만 스스로 떳떳하기에 누굴 만나도 당당하다. 한사람은 감옥 밖의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누리는 상대를 미워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감옥 밖의 사람들에게 부럽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있으면 청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
순간순간 전자로 돌아가려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갖고 있는 방향성이 더 깊은 어둠을 향해 있는지 아니면 밝은 출구를 향해 있는지에 따라 한 시간 후, 하루 후, 한 달 후의 나의 위치는 달라져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비단 장애아 부모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을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나진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