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성격은 다정다감한 편으로 감정적으로 널뛰기를 많이 했던 나를 잘 잡아줬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변했다. 결혼 후 바로 변한 것도 아니고 10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라고 하기에 내 마음은 썩 너그럽지 못했다. 억울함과 서운함, 서러움이 몰려와 나를 마구 두들겨 팼다. 거기에 큰아이는 사춘기를 맞이하며 반항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안갯속을 헤맸다.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해결책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큰아이의 심리는 대체 무엇인지, 우리 가족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방법을 찾아 헤매다 우연히 가족상담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되었고 유레카를 외쳤다. 바로 이거다. 우리 가족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 우리 가족이 왜 이지경까지 왔는지 알 수 있는 방법, 남편과 큰아이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방법. 나는 그렇게 기고만장 자신만만콧김을 드릉드릉 내뿜으며 기대감에 잔뜩 부푼 채 가족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주말을 할애하여 수업을 듣고 시험도 치고 보고서도 작성하면서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를 고칠 방법을 알아냈나?
1학기 2학기 3학기가 지나면서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남편과 아이를 고쳐서 원래대로 돌린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어리석고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화살표의 끝을 상대방에게 돌려 네가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야! 하고 나를 책임에서 슬그머니 빼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자식이라면 당연히 이래야지 하는 나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무조건 상대의 문제라 생각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에 생겨나는 불편한 감정은 나의 자라온 환경, 나의 고정관념, 나의 생각들, 나의 기준들이 뭉쳐 만들어졌거늘, 그 원인을 상대방에게서만 찾아왔으니 거기서부터 잘못된 스텝이었다.
지인과 수다를 떨었다. "그러니까 글쎄 00가 이렇다니까, 00가 어떻더라고..."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하나의 에피소드가 내 안의 어딘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인이 한 이야기들은 내 가치관과 반대되는 이야기도 있고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많은 대화들 중에서 왜 유독 그 하나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예전이라면 지인의 탓을 했을 것이다. 그 지인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그런 생각을 하는 거람, 하며.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주체자인 '나'를 쏙 빼놓은 채 말이다. 어쩌면 이후에 그 지인과의 만남을 피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강하게 매몰되어 있는 것은 나고 유연하게 넘어갈 수 없었던 것도 나인데. 상대가 바뀐다 해도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또 불편해질 것 일터인데.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그 에피소드는 나의 숨겨진 욕망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꽁꽁 숨겨놓고 절대로 꺼내고 싶지 않은, 나의 깊은 곳에 자리한 욕망을 감추고 싶은 심리가 상대방을 되려 비난하게 만들었다.
"어머, 그렇구나세상에. 근데 말이지, 사실은 나도 그런 게 부러워. 나도 그런 부분을 갖고 싶어."
라고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어머, 저 사람 왜 저래. 어떻게 저런 말을. 정말 불편해."
했던 것이다.
관계에서 불편했던 부분들을 짚어보면 그 끝에는 언제나 나의 욕망이 자리해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나는 관계에서의 심리적 해방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