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게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낳은 다음에 열심히 먹이고 가르치고 하면 되겠지 싶었다. 아니, 그런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참 아무 대책도 준비도 없이 아이를 낳아버렸다. 육아에 대한 모든 것들을 미리 생각해 보았더라면 감히 아이를 낳을 생각은 못했으리라.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부지런히 하락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배운 십수년의 지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깨달았다. 미분이니 적분이니 분자식이니 화학식이니 몇년도에 갑오개혁이 일어났는지 관계대명사의 규칙 따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덜컥 미지의 세계에 들어와 버린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어떤 것은 본능대로, 어떤 것은 열심히 인터넷을 찾아, 양가 부모님들 친구들 지인들에게 물어, 육아책을 뒤져가며 어쨌튼 한발 한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실수들을 하게 되고 아이는 그로 인해 다양한 피해(?)를 입으면서 성장하게 된다.
슬픈 것은, 그렇게 애써도 아이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성장해주지 않는다. 아이는 DNA의 지휘하에 제 나름대로 커나가게 되고 그것이 특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 엄마는 좌절한다. 사회와 사람들은 아이에 대한 질타를 부모에게, 특히 양육을 전담한 엄마에게 쏟아내게 된다. 일부 비상식적으로 잘못한 엄마들도 분명 있지만, 나름대로 잘 키우려고 고군분투했던 엄마들은 배신감과 슬픔, 좌절, 실망,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몇년 전 부터 '맘충'이라 비하되는 자녀 동반 엄마들에 대한 불만, 갑질맘 등의 이슈가 지속적으로 터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SNS와 동영상 등으로 간접체험할 수 있게 된 정보의 과부하 시대에, 어떤 여성이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낳아 기를 결심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예쁜 옷 입고 곱게 화장하고 가고싶은 곳에 가서 우아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에서,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 없이는 수년간 화장은 커녕 머리 한번 하기도 힘들어지고 노키즈존을 걸어둔 식당의 거절메시지를 듣는 삶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는 왜 태어났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법륜 스님께서 대답하시길 "순서가 뒤바뀌었다.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유가 생긴 것이다. 이유가 있기 이전에 이미 삶은 주어져있다. 주어진 삶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엄마로서의 역할은 아이에게 어떻게 되어라, 어떤 삶을 살아라, 어떤 성과를 내어라 가 아니라 '태어난 것을 축하해. 네 삶의 이유를 찾아나가는 것을 도울께' 까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내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못했던 것도, 표면적으로만 인정한 척 했던 것도, 그래서 마음이 몹시 힘들었던 것도, 아이에게 내 맘대로 삶의 이유를 부여하고 목표를 정해주려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나의 미성숙한 부분들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콕콕 찌른다. 여기 부끄럽지 않아? 이 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문제네? 이건 뭐야, 너무 하찮은 부분이네 등등.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실은 나를 키우는 것 같다. 아이가 없었다면 나의 많은 부분들이 어리석고 부족한 상태로 남아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갔으리라.
한번 사는 삶인데, 굳이 힘든 출산 육아의 경험을 통한 깨달음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길로 발을 들여놓은 이상, 미성숙한 엄마에서 성숙한 엄마로, 어리석은 인간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育兒가 아닌育我 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