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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철 Sep 29. 2024

왜 그렇게 그렸니? 서양미술사

3-6. 클래식의 기원, 그리스 미술(BC 3~2세기)

자연 모방 극적인 완성, 헬레니즘 미술


알렉산더 대왕 사후 헬레니즘 왕국은 후계자들 간의 이전투구로 혼란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상업과 해상무역 등의 활성화로 경제적으로는 큰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페르가몬과 같은 대규모 도시들의 출연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도시의 부유한 계층이나 왕실은 예술의 후원자가 되어 미술 작품과 건축물의 주요 수자가 되었다. 결국, 경제 부흥은 다수의 후원자를 만들고 예술가들은 더 많은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양적 성장에 따른 기술적, 창의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탄생한 후기 헬레니즘의 대표 3 대장 작품이 있었으니 <로도스의 거상>, <밀로의 비너스>, <라오콘 군상>이다.


<로도스의 거상>은 에게해 남동쪽에 위치한 그리스의 '로도스'라는 섬에 위치한 거대 청동상이다. 3-5장에서 언급한 셀레우코스 왕조의 10대 군주인 데메트리오스의 침공을 격퇴시킨 후 승전 기념물로 제작된 이 거상은 '로도스'의 수호신인 헬리오스 신에게 봉헌되었다고 전해진다. 헬레니즘의 거장 '리시포스'의 제자 '카레스'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제작기간은 기원전 292년부터 280년까지 장장 12년이 걸렸다. 현재는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이 거상은 높이가 약 30~40M에 이르러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비슷한 규모라고 하니 당시의 기술 수준 고려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이유로 이 거대 청동상은 피라미드,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등과 함께 고대 문명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후대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진 '로도스의 거상' 상상도

 


후대에 이르러 <밀로의 비너스>만큼 많은 논란을 가지고 있는 작품도 드물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마케팅으로 그 가치가 부풀려져 있는 점, 이러한 프랑스에 대해 지금의 멜로스 섬 주민을 포함한 그리스의 반환 캠페인, 부서진 팔로 인한 작품의 완결성에 대한 논란 등.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밀로의 비너스>는 부드러운 곡선, 완벽한 신체 비율, 자연스럽고 세밀한 표현 등으로 헬레니즘 미술의 자연주의적 요소와 고전기의 이상화된 인체의 조화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작품이라는 이며, 반대로 동시대 작품과 비교하여 극적인 요소와 감정적 표현이 부족하여 상대적으로 밋밋한 작품이라는 의견도 있으니 참고 바란다.


작가 미상, 밀로의 비너스 / BC 150~100년 경



헬레니즘 미술의 정수를 꼽으라면 열의 아홉은 <라오콘 군상>을 손꼽을 것이다.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의 사제였던 라오콘은 목마를 들이지 말라고 경고했고, 이를 막으려는 그리스가 추앙하는 신들이 두 마리의 뱀을 보내 그와 그의 아들들을 죽이는 장면을 표현한 이 조각품에 대해 곰브리치 또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망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노력과 고통을 표현하는 몸통과 두 팔의 노력, 사제의 얼굴에 새겨진 고통의 표정, 벗어날 수 없어 괴로워하는 두 소년의 몸부림, 그리고 이 모든 소동과 움직임을 하나의 영원한 군상으로 응결시키는 수법 등이 오랜 세월 동안 찬탄을 불러일으켜 왔다."_P 111 / Story of Art


기원전 100년 경, 로도스섬의 조각가들인 아게산드로스, 폴리도로스, 아테노도로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이 조품은 인체의 움직임과 근육의 미세한 변화를 정교하게 묘사하여 신체의 긴장감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백미로 인물들의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통해 몸의 균형과 긴장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라오콘의 근육은 고통 속에서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로 묘사되었으며, 이는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가들이 인체의 동적 표현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깊이 연구했는지를 보여준다. <라오콘 군상>의 이러한 극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는 이후 인간의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하는 바로크 미술에 특히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아게산드로스/폴리도로스/아테노도로스, 라오콘 군상 / BC 100년 경(좌),  유물 발견 후 최초의 복원 작품(우)



헬레니즘 시대에 와서는 미술이 오랜 세월 유지해 왔던 주술적, 종교적 연관성을 거의 상실했다고 평가한다. 대신, 미술가들은 그들의 기술 자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부자들이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정원을 장식하기 위해 큰돈을 지불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저술가들은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미술가들의 생애를 글로 썼으며 그들의 기이한 행동에 관한 일화를 수집하여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 책자들을 만들었다. 고대의 유명한 거장들 중에는 조각가보다 화가가 더 많았으나 우리는 전해 내려오는 고전 시대의 미술 서적에서 발췌한 작품에서 알 수 있는 것 외에는 그들의 작품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은 일상생활 속의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이발소나 연극의 한 장면 등을 그렸다고 전해 들었으나 이 모든 그림들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_p 112, 113 / Story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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