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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입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열차가 도착하고, 승객들이 내리던 중 한 어르신이 내리시다가 문틈 사이에 발이 끼어 넘어지셨습니다. 주변 승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가가서 할아버지를 일으켰습니다. 저도 같이 힘을 합해 할아버지를 일으켰는데, 할아버지가 제 손을 잡고 일어나셨습니다. 누군가의 손이 닿은 게 되게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현수막이 붙었고, 지하철 플랫폼에서는 방송이 나옵니다. 가까운 이와도 거리를 두라 하는데, 하물며 낯선 이는 오죽할까요.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낯선 이와 닿는 것을 꺼릴 수도 있건만 시민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할아버지를 도왔습니다. 괜찮으시냐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솔선해서 119에 신고했습니다.
곁에 있는 이가 이웃이 아니라 조심해야 할 누군가가 되어버린 지금, 오랜만에 닿은 낯선 이의 따뜻한 손에, '이 시국에도' 신경 쓰지 않고 타인을 돕는 사람들 덕분에 마음이 일렁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역시 서로의 다정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이 시기를 잘 이겨내고, 서로를 구해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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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시던 아저씨가 119에 신고하셨고, 저는 구급대원분들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것까지 보고 자리를 떴습니다. 지하철을 타며 아래 틈을 보니 정말 넓습니다. 걸려 넘어지고도 남겠다 싶었습니다. 언젠가 장애인 인권을 위해 힘쓰시는 김예원 변호사님의 강의를 들을 때, 지하철 방송과 관련하여 '발 밑을 조심하라 말할 게 아니라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장애인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이었다면 어제 할아버지가 넘어지시는 일도 없었겠지요.
약한 이도 잘 살아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라면, 모두가 안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스템이 그렇지 않은 이유에는, 내 일이 아니라고 목소리 보태지 않은 제 탓도 조금은 포함되어있겠지요.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의 선량함이 서로를 구해낼 수 있음을 믿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