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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ds Mar 23. 2020

산책하다 갑자기 시작된 비치코밍

지난 주말, 종일 실내에만 있는 것이 힘들어 바닷가 산책에 나섰습니다. 날이 많이 따뜻해져서 바닷바람이 춥지 않았습니다. 봄이 온 것 같아 들뜬 마음으로 한가롭게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쓰레기가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직업병입니다. 한가한 산책은 물 건너갔다 싶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중국에서 떠내려 온 페트병입니다. 바닷가에서 중국 페트병을 여러 번 발견한 이후부터, 바다에 갈 때마다 페트병 쓰레기를 유심히 봅니다. 아마 한국 대부분의 바닷가에 중국에서 온 쓰레기가 이렇게 파묻혀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요? 그냥 주워다 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생산일도 살펴볼 걸 그랬습니다. 바다는 돌고 도니 한국산 쓰레기도 바다를 따라 어딘가에 도착해있겠지요.



쓰레기가 참 종류별로 많습니다. 플라스틱 장난감이 보입니다. 고무장갑 손가락도 보입니다. 상태를 보니 꽤 많이 삭았습니다. 고무장갑을 버린 사람은 이 손가락이 지금 여기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할까요? 색이 바랜 낚시 미끼는 두 개나 발견했습니다. 유리조각도 단골 바다쓰레기입니다. 그래도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어구와 스티로폼 조각들이었습니다.


스티로폼 조각은 줍기가 어렵습니다. 비치코밍(beachcombing)은 그 이름의 뜻대로 해변을 빗질하듯 훑으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말합니다. 신안의 바다에서 비치코밍을 해본 적이 있는데, 스티로폼 조각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주우면 날아가고, 다시 주우면 또 날아가고. 내가 줍지 않으면 이 스티로폼 조각을 물고기가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기로 열심히 줍긴 했지만, 참 어려웠습니다. 그런 스티로폼이 해변에 참 많습니다. 떠내려온 해초, 그리고 어구와 뒤엉켜 있습니다. 전부 미세 플라스틱입니다. 어구도 바닷물과 바람에 닳아 가닥가닥 나눠지거나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산책이 난데없이 비치코밍으로 바뀌었습니다. 쓰레기봉투와 도구를 들고 나오지 않아 ‘빗질’은 못하고 손에 잡을 수 있는 만큼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다행히 쓰레기통이 곳곳에 있어 여러 번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은 줍지 못하고 커다란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두 손 가득 네댓 번 정도 쓰레기를 주웠는데, 남은 쓰레기가 여전히 많습니다. 마음에 걸립니다.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 여기 한 조각도 없을 거라고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열심히 분리수거했지만, 분리수거한 쓰레기가 모두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답이겠지요.



한편 바닷가에는 폭죽 쓰레기도 많았습니다. 신나게 놀고 그대로 두고 갔나 봅니다. 모래를 들여다보면 갈매기 발자국이 보입니다. 바다에 발자국만 남기는 갈매기처럼, 인간도 흔적 없이 다녀갔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30년 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거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만날 바다가 지금보다 더 더럽고, 빈곤해질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습니다. 생활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바다에 갈 때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버려진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줍는다면 우리의 미래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더 이상 플라스틱과 비닐을 잔뜩 먹고 죽은 고래, 거북이, 상어의 소식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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