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련은 대체로 즐겁지만 집에 오는 길에 왠지 씁쓸해지는 날이 더러 있다. 그런 날은 수련에서 내가 바라는 만큼 동작을 해내지 못했을 때다. 부장가아사나(코브라 자세)를 했는데 상체를 얼마 들지도 못하고 낑낑거렸던 날이나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누운 활 자세)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몸을 들어 올리지 못했을 때, 차투랑가 단다아사나를 했는데 몸이 철퍼덕 바닥으로 엎어졌을 때, 나는 속으로 탄식하곤 했다. 나의 아사나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면 잠들기 전까지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다. 물론 내가 매트 위에 오르는 걸 멈추지 않는다면 수련의 기회는 계속 있으니 다음을 기약하곤 한다.
못하는 나를 견디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을 탓하게 되는 날, 이완하는 동작이 유난히 아프고 힘든 날, 버텨낼 힘이 없는 몸을 만나게 되는 날, 이미 할 줄 아는 동작임에도 겨우겨우 해내게 되는 날. ‘나 왜 이렇게 못하지?’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요가에는 ‘잘’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에게는 더 가혹하고 빡빡한 기준을 들이댄다. 각도가 이상하잖아, 팔을 더 밀어내야지, 좀 더 버틸 수 없어? 이럴 때면 의식적으로 떠올려야 한다. 잘한다, 못한다 평가 내리지 않고 묵묵히 하는 것이 수련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 수련의 목적은 하루하루 아사나를 잘 쌓아서 어려운 동작을 고통 없이 해내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멋지게 성공해 낸 동작만 수련이 아니다. 내가 부끄러워했던 부족한 동작도 수련이다. 서툴게 시도했던 그 모든 동작이 쌓여 지금의 동작이 되었다. 부족하지만 시도하고 또 시도했던 과거의 나 덕분에 내 아사나가 점점 바른 정렬을 찾아간다. 씁쓸한 마음이 찾아와도 한 번 더 시도해보는 지금의 수련이 훗날의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지금 여기의 나에게 가장 좋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트 위의 배움을 삶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까? 일하면서, 관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서툰 나를 미워하지 말고, 그 부족한 내가 해온 모든 것들이 경험으로 쌓여갈 것이라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을까? 자책의 마음이 올라올 때 시선을 내 안으로 두기보다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하는 길로 옮겨볼 수 있을까? 삶이 늘 즐거운 건 아니지만, 먼 길 걸어야 하는 내 두 발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다시 마음을 다잡는 날, 매트 위에서 배웠으니 삶에도 실현해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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