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활동가로 살아오며 감사하게도 자연에 들 기회가 많았다. 주로 환경 분쟁지역, 난개발이 예정되어 있거나 진행 중인 곳이었다. 관광을 위해 찾는 곳이 아니었고 때로는 인간이 만든 길이 아니라 야생동물의 길로 다녀야 했던 덕분에 가까이서 자연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배운 것은 ‘자연에는 결핍이 없다’는 것, 정말 ‘자연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개입이 없다면 자연은 있는 그대로 조화롭고 충분했다. 이러한 자연의 충분함을 요즘은 내 삶에서 발견하고 있다.
요가를 처음 만났을 때는 마음이 많이 어려울 때였다. 그때 나는 나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필요한 것도, 부족한 것도 많았다. 예민하고 나약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나서 마음의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지? 억울했다. 그냥 가볍게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삶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내일은 눈 뜨지 않길’ 바라며 잠이 들 때도 있었다. 그때 만난 요가는 마치 동아줄 같았다. 요가와 명상이 데려가는 '지금 여기'가 너무나도 절박했다. 지금 여기에 머물면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사라졌으니까. 마치 약을 삼키듯 수련했다. 수련을 마치고 나면 나를 괴롭히는 마음이 고요해졌다. 평온했다. 그때의 나는 잔뜩 무게를 싣고 힘을 주어 수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살려고 발버둥 치며 요가를 붙잡았으니까.
시간이 흘러 지금은 평온을 위해 수련하지 않다. 절박하게 명상과 요가를 찾았던 그 시간들, 그리고 나의 선생님들과 곁에 있어준 사람들 덕분에 평온함에 머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었다. 이제는 무언가 바라는 마음으로 수련하지 않다. 수련을 하는 것이 순수하게 기쁘다. 절박한 마음으로 요가를 찾았을 때는 감히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는 재미있고 행복하다. 수련을 마치고 나면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오른다.
복이 참 많다. 돌아보면 삶의 순간마다 필요한 것들을 만난 것 같다. 요가가, 명상이, 상담이, 비폭력대화가, 따뜻한 식사와 이야기가, 넉넉한 마음이, 소중한 체온이, 계절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심지어 내가 나를 미워했던 그 순간들 마저도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도록 도와준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럴 때 자연의 충분함이라는 법칙이 나의 삶에도 스며들어있음을 발견한다. 내 삶 또한 이미 충분하다. 필요한 것이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내가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에 시선을 두고 내게 없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도, 이미 나에게 필요한 것들은 내게 있었다. 내가 알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나 또한 지구가 만들어낸 생명이기에 자연의 법칙에 속해 있을 테니까. 자연은 그 자체로 온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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