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역행하며 마음껏 실패해 보자.
매해 1월 1일이 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다짐들을 쏟아낸다. 내 아이폰의 메모장에는 제법 오래전부터 '2021 목표'라는 제목의 글이 자리하고 있다. '매일 아침 5시부터 1시간 동안 책 읽기', '딸아이와 놀아줄 때 휴대전화 보지 않기', '나의 꿈인 ooo 완성하기' 등 아주 작은 습관부터 나의 원대한 꿈까지 빼곡히 적혀있다. 어떤 것들은 과감히 1월 1일부터 실행에 옮겼지만, 새해 첫 근무일인 오늘 1월 4일, 불과 3일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아직 시작도 못했거나 벌써 잊어버린 일들이 더 많다. 작심삼일이라는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깊은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3일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 꾸준하고 성실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하지만 모든 한국인에게 지금 이 순간은 마법의 시간이다. 우리에게는 늘 한 번의 기회가 더 찾아오기 때문이다. 바로 음력 1월 1일, 우리의 진짜 시작, 우리 우리 설날이다. 올해 2021년에는 심지어 2월 중순에 설이 찾아온다. 앞으로 무려 40일 동안 방황하고 떠돌며 실패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지는 것이다. 금연에 도전했든 금주에 도전했든 매일 무언가에 도전했든 한번 실패하더라도 또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빅 찬스가 남아있다.
이 시간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목표를 향해 쭈욱 밀고 나가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고 무엇보다 격렬히 원하는 길이다. 하지만 그 길에는 역시나 장애물이 먼저 보인다. 늘 훼방만 놓는 지긋지긋한 그 녀석이 오면 이내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고 곧 내가 주저앉아 있는지 일어서서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냥 현실에 타협하고 순응하며 과거와 똑같은 하루하루를 마주하고, 거침없이 밀려오는 시간이라는 놈에게 몸을 맡겨버리게 된다. 그러다 정신차려보면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마주하는 것이 우리가 매해 겪는 일상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난해한 영화 <테넷>을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회전문이 나온다. 이 타임머신은 일반적인 시간 여행 영화에 나오는 그것과 꽤 다르다. 특정한 과거의 지점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 1주일이면 1주일, 한 달이면 한 달이라는 시간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똑같은 시간을 역행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주일이면 1주일이라는 시간을 똑같이 되짚어 돌아가야만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영화는 어려웠지만 이 하나의 참신한 발상 하나만은 이해가 되었기에 이런 글도 쓸 수 있다.
지금의 우리가 꼭 <테넷>의 회전문을 통과하는 사람들 같다. 다시 40일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다. 1월 1일은 이미 지났지만 그곳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월 1일부터 다짐했던 일들 중 내가 꼭 바꾸어야 하는 것들을 눈여겨보는 중이다. 시간을 역행하고 하나하나 기록해두며 잊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다. 이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올해도 그대로 종료다. 마법의 시간이 끝나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맞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찾아오니 이렇게 제 멋대로 생각하며 그냥 한번 해보자.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한번 더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은 짧고 굵게 우리에게 큰 임팩트를 준다. 어느덧 잊힌 수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다시 떠올릴 수 있다. 매일 실수만 하며 살고 있는데 1월 1일부터 요 며칠간 이어진 몇몇 실수들로 발목 잡혀서야 되겠는가. 앞으로 40일 동안 회전문을 통과해 시간을 걸어 올라가는 마법의 시간을 잘 활용해보자.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애쓰다 포기할 필요 없다. 이거 말고 하나의 목숨이 더 있으니 그때 진짜 잘해보면 되는 거다. 실패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기간이니 부담도 없고 마음도 편하다. 이 시간을 즐겨보자. 실패를 마음껏 더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