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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Feb 03. 2021

각종 고지서를 대하는 두 종족의 상반된 태도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기.


전혀 다른 두 종족이 함께 살게 되면 서로의 다른 점을 무수히 맞닥뜨리게 된다. 생활 속에서 두드러지는 상반된 삶의 방식 중 하나는 각종 고지서를 대하는 태도다. 한해만 봐도 수많은 고지서를 만나게 되는데, 그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날아올 때마다 한집에 사는 두 종족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또다시 다름을 확인한다.


집안에 고지서가 날아들면 즉시 처리족인 나는 바로 스마트폰을 든다. "여보 이거 봤어? 또 돈 내야 해..."라고 말하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처리해버린다.  반면 데드라인족인 아내는 우편함에서 고지서를 받아 들면 자연스레 몸의 흐름이 닿는 어딘가에 고이 모셔둔다. 그리고 그건 누가 건드리지 않는 한 웬만하면 납부기한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연초에 가장 먼저 만나는 돈 나가는 녀석은 각자 소유하고 있는 차량의 자동차세 연납 할인 고지서다. 자동차세는 보통 6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절반씩 납부하는데 1월에 납부하면 10%의 할인 혜택이 있다. 나는 할인도 받을 겸 꼴 보기 싫은 그 녀석을 만나면 즉시 처단하고 갈가리 찢어 없애버린다. 같은 고지서를 함께 봤지만 아내에겐 전혀 다른 프로세스가 가동된다. 일단 어딘가에 둔다. 그리고 굳이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 6개월 뒤 통상적인 자동차세 납부기간인 6월이 되면 기가 막히게 그걸 떠올려 납부한다.


두 종족은 올해로 결혼 7년 차에 접어들었다. 우리가 함께 산 이후로 처음으로 고지서에 대한 서로의 태도를 확인한 순간 나는 굉장히 의아했다. '왜 저걸 빨리 처리하지 않는 거지?' '10%나 할인이 되는데...'라고 생각하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자동차세 얼른 내버려. 그거 할인되니까 무조건 1월 중에 해야 해." 그런 내게 아내는 대답했다. "30만 원 가까운 큰돈이 나가는데 어떻게 한 번에 내. 나는 그냥 나눠서 낼래."


아내와 나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 어떤 일을 해결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나는 미리 하는 성격일 뿐이고, 아내는 바로 하진 않아도 기한에 맞춰 늦지 않게 처리하는 성격인 거다.


처음엔 그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방식, 내가 보아온 부모님의 생활 습관, 기존 우리 집의 방식이 나도 모르게 배어있는 내 프로세스가 무조건 옳다고 여겼다. 그래서 고지서뿐만이 아니라 각종 다른 것들을 대하면 무조건 내 방식대로 하려 했고, 아내도 나를 따라 하길 원했다. 하지만 수많은 상암 골의 대첩을 치르고 나서 아내의 이 한 마디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오빠! 다 오빠가 맞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치지 왜 그렇게 안 해?"


사실 부부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일은 각자의 방식이 중요치 않다. 살 곳을 정한다든가, 아이 교육에 대한 결정이라든가 하는 큼지막한 일은 서로가 힘을 합쳐 서로 시너지를 내려한다. 또 마주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힘든 일들은 함께 극복하려는 자세를 자연스레 취하게 된다. 말 그대로 한 편이 된다. 서로의 의견을 최대로 반영해 정반합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두 종족이 가장 크게 대립하는 건 정말 사소한 일들이다. 이런 고지서를 대하는 태도 따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일들이 부부의 삶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참 뜻대로 안 되는 일이지만 반드시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노력하지 않는 순간 관계는 사라지고 일방적 통보와 불통만이 남는다.


즉각 처리족은 얼마 전 1년 치 자동차세 연납을 하고나니 세상 뿌듯하다.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즉각 처리하니 행복하다. 반면 데드라인족은 내야 할 돈이 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을 거다. 우리 돈을 털어가는 녀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누리고 있을 거다.


어느 쪽이든 어떠리. 함께 살고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 아무리 부부라도 굳이 서로를 바꾸려들지 않고 서로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그것으로 조금은 더 행복한 한집살이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은 오늘의 다름이 다시 찾아온다. 그게 부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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