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진상 취급하는 건 누구인가
지난달 장례식을 치르며 무리한 탓인지 오른쪽 무릎이 아팠다. ‘좀 뻐근하네?’하고 무시하고 있다가 최근에 한번 ‘억!’ 소리 나게 아파서 그다음 날 당장 회사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오른쪽 다리를 이리저리 두드리고 돌려본 의사는 현재 상태나 엑스레이 사진상으로 별 이상 없다고 했다. 가끔 ‘이유를 알 수 없는’ 염증이 생기면 일시적으로 그러기도 한다면서 내게 무릎에 주사를 한 대 놓아줄 테니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무릎에 주사...?’ 팔과 엉덩이에만 맞아본 주사를 무릎에 맞는다니, 덜컥 겁이 난 나의 목젖에는 오만가지 질문이 찰랑찰랑 차올랐다.
‘큰 이상이 없다면서 주사는 왜 맞으라는 거지? 그 주사는 무슨 성분이지? 뉴스에 보면 그런 약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던데, 왜 그런 걸 하나도 설명하지 않지? 그 이전에 정형외과 전공의는 맞나? 이 전에 다니던 정형외과(인 줄 알았던) 병원의 원장은 나중에 알고 보니 가정의학과 전공이던데 이 사람도 그런 것 아닐까?’
하지만 그 수많은 의문 중에서 겨우겨우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딱 한 마디였다. “어... 얼만가요?” 싱긋 웃으며 “의료보험 되는 주사라서 얼마 안 해요.”라는 의사의 대답을 듣고 나는 주사실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무릎을 드러낸 채 주사실 침대에 누워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떠오른 의문들을 곱씹던 나는 의사가 들어와 붉은 소독약으로 주사 놓을 부위를 닦는 참에야 두 번째 질문을 꺼냈다.
“어... 이건... 스테로이드인가요?” 나름 여기저기서 ‘안 좋다’라고 들었던 약품의 이름을 들먹이며 성분을 설명받지 못한 나의 찜찜함을 드러내려 했다. 의사는 주사 놓을 곳을 짚으며 주사기를 들고 다시 친절하게 대답했다. “스테로이드가 극소량 들어있고요, 마취제가 들어있는데 이게 염증을 재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조금 뻐근합니다.” “아.. 네...” 의사는 “네”의 모음 ‘ㅔ’가 끝나기 무섭게 주사를 내 무릎에 찔러 넣었다. 주사약으로 무릎에 뻐근함이 퍼지는 와중에도 나는 의사의 설명에 성실하게 리액션했다. “그...(억 아파!) 그렇구나...”
의료보험이 되는 주사 덕분에 엑스레이와 주사비, 진료비 다 해서 44,920원. 나는 내가 이 치료에 동의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모호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의사는 친절했고, 내가 입 밖으로 꺼낸 질문에 한해서는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의 마음에는 찝찝함이 묻어있었다. 내가 목구멍에 가득 찼던 의문들의 대부분을 꺼낼 수 없었던 것은 왜일까. 아마 내게 선택권이 있긴 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더라도 전공지식도 뭣도 없는 나는 그저 ‘그렇군요’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데 의사를 좀 더 고생시킬 뿐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의문을 쉽게 ‘진상’ 취급해버리는 나를 발견한다. 나의 문제의식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나를 발견한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불안과 의문은 진상의 징징거림에 불과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들, 그들의 1분을 내 불안 해소에 쓰게끔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다음에는 흰 가운에 쫄지 말고 내 의문을 좀 더 소중히 하자고 다짐해본다. 쉽게 되진 않을 테니 최소한 비용, 성분, 부작용 이 세 가지는 꼭 묻기로 마음먹어본다. 물론 그에 앞서 아프지 않은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오늘도 이렇게 내 잔고가 5만 원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