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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 Sep 17. 2020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으로부터 도망쳤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유령을 부르며>를 보고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유령을 부르며>를 보고 난 후 기록과 단상


"이 시대에 이런 일이 가능한가?"

영화는 '평범한 여성'으로 살아가던 야드란카와 누스레타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92년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보스니아의 북부 도시 프리예도르를 장악한 뒤 이슬람교도들과 비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하며 그들의 일상은 파괴된다.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쳐 이유도 모른 체 끌려간 곳은 오마르스카 수용소. 이후 악명을 떨치게 되는 그곳이다. 점령 전에는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일상을 나누던 세르비아인들은 갑자기 그들을 모르는 척하고 폭행과 고문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다 죄가 있으니 그런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저런 사람들은 세르비아 정부 반대자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유 없이 오마르스카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에게는 패턴이 있었는데, 대부분 이슬람교도이거나 크로아티아계 지식인이었다. 주인공인 야드란카와 누스레타 역시 각각 변호사와 판사였다. 그중 여성은 모두 36명으로, 그들은 제대로 된 침실조차 없어서, 낮 동안 취조실로 쓰인 공간에서 피를 닦고 잠을 자야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 중 하나는 음식을 배분하는 것이었는데, 수용자들은 목에 자상이 가득했고, 쇄골이 골절되거나 피투성이인 채로 밥을 먹으러 왔다고 한다. 쌓여있는 지인들의 시체나 고문당해 만신창이가 된 아들을 보며, 제발 고문이 아닌 총살로 빠르게 목숨을 끊어주기를 바랐다.


"그녀는 마흔다섯 살이고, 나는 스물여섯 살이다. 야드란카는 매력적이지도 않고 냄새도 심했다. 그녀 곁에는 내 자전거도 세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린 여성들부터 데려가기 시작했다. 밤이면 옆방의 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며칠 후 어느 밤. 야드란카와 누스레타의 방의 문이 열렸다. 야드란카가 끌려간 곳에는 남자 예닐곱 명이 있었다. 밤 9시 30분 언어폭력을 시작으로 구타와 성폭력까지 이어졌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방으로 돌아왔고, 여성들은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서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런 밤은 계속 이어졌다. 가장 고약했던 것은, 수용소 소장이 아침마다 여성들에게 '혹시 강간당한 적 있으면 나에게 말하라'라고 하는 거였다고.



"22일 동안 집에 가만히 앉아 내 그림자도 무서워하며 지냈어요."

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세르비아 정부에도, 현장 취재를 통해 오스카마르 수용소에 대해 알게 된 영국 가디언지의 기자는 92년과 93년 수용소를 방문했다. 기자들의 급습 정보를 눈치챈 수용소 소장 등은 다짜고짜 집으로 보내주겠다며 여성들을 내보낸다. 20㎞가 넘는 길을 맨발로 걸어 집에 도착한 그들. 야드란카의 아들이 두 달 만에 보는 어머니를 바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야위어있었다. 누스레타는 이미 세르비아인 동료가 집을 차지해버려, 친구의 집을 전전해야 했다.


"아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자신으로부터 도망쳤다."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기억이 몸과 영혼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버린 여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더러운 물을 마셔서 신장에 문제가 생겼고, 어떤 일에 집중할 수도, 마음 편히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밥을 먹을 때 누가 뒤로 지나가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총이 아닌 손길이 닿아도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뿐인가. 성폭행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남편과 이혼한 피해자도 있었다. 어떤 이는 수용소에 끌려가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집에서, 그것도 남편과 아이가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임신과 출산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얼마 후, 야드란카와 누스레타는 결심한다. 자신을 은폐하고 진실을 숨기는 건 좋지 않다고. 실종된 다섯 명의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밝혀야 한다고. 그렇게 그들은 10월 3일, 첫 번째 증언을 한다.


"나는 지금 신의 형벌을 받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동안 외면해왔던 것에 대한 형벌. 이제는 언제나 죄책감이 들어요."

야드란카는 복수를 위해 증언을 모으기 시작한다. 또, 주요 고문자이자 수용소 소장이었던 젤코 메야키치를 비롯한 가해자들을 전범으로 고소하기 위해 누스레타에게 변호를 부탁한다. 증언을 듣고 정리하면서 오히려 야드란카는 증오가 가라앉고 고해성사를 듣는 마음이 되었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의 피해를 듣고 어루만지며 치유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걸까. 정말인지,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화면 속 야드란카의 표정이 점점 변해가는 것 같기도 했다.



"여성들이 정의를 얻을  없다면 정의는 없습니다."

야드란카가 수집한 증언과 증거는 기소를 촉발시켰고, UN 국제형사재판소는 인권법 역사상 처음으로 '강간'을 전쟁범죄 유형에 포함했다. 인종청소의 수단으로 사용된 점이 인정된 것. 야드란카와 누스레타는 재판이 끝나고, 여전히 고향에 사는 과거의 동료들에게 엽서를 보낸다. 곧 우리 반갑게 스위스 법정에서 만나자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가 제작된 96년까지 NATO군은 기소된 전범 중 한 명도 체포하지 않았다는 자막을 끝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1996년 제작된 영화는 14년 후 2020년 서울에 사는 나에게, 크로아티아 하면 '꽃보다 누나 촬영지'부터 떠올랐던 나에게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영화를 계기로 검색을 통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내전에 대해 알았고, 동유럽의 문화·종교 갈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주인공인 야드란카와 누스레타가 일상을 보내던 동네, 그리고 이제는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프리예도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1990년 탈냉전 이후 문화/종교 차이로 인한 민족 갈등이 심해져 이슬람교도와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간의 내전이 발생했고, 이는 세르비아인의 인종청소로 이어졌다. 1995년 데이턴 평화협정 체결로 현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이슬람&크로아티아계)과 스르프스카 공화국(세르비아계)의 1 국가 2 체제를 수립했으며, 각각의 입법부와 대통령을 두는 정치체계를 갖고 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 2001년,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UN 산하 구유고슬라비아 국제 형사재판소(ICTY)가 오마르스카 수용소에서 살인, 강간 등 만행을 저지른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전범 혐의자 5명에 대해 종신형 등의 중형을 구형했다는 세계 단신 뉴스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젤코 소장이 처벌받았다는 뉴스는 찾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먼, 남의 일이었던 걸까.

작년인 2019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대규모 '인종 청소'를 지휘한 장본인인 라도반 카라지치가 항소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3년의 도피 생활 끝에 2008년 체포되었고, 2016년 1심의 40년 형 선고에 불복해 항소한 바였다. 수십 만 명을 학살한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이 고작 수십 년짜리 목숨뿐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유감이다.

억울하게 끌려가서 말 못 할 고초를 치렀음에도, 죽음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쳐 살아 돌아왔음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2차 가해를 당할까 봐 전전긍긍했을 그들. 그 안타까운 모습에서 '위안부' 생존자들이 보였다.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음에도, 손가락질을 받으며 다시 청나라로 돌아가거나 창부가 되어 생을 연명해야 했던 '환향녀'들도 보였다. 전쟁은 여성의 삶과도 이토록 밀접하다.




검색하면서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세계적인 자선단체 '용서 프로젝트'를 통해서 용서 경험을 공유한 46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그중에는 오마르스카 수용소의 생존자인 케말 퍼바닉도 있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어서 미워하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니다. 증오는 그들이 시작한 일을 성공적으로 완성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미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영화로만 접한 나도 용서를 할 수 없는데, 당사자가 용서했다고 하니, 심지어 용서를 빌지도 않는 자들을 용서했다고 하니 의아하다. 과연 어떤 마음에서였는지 궁금하다. 기회가 닿으면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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