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을 보고
"왜 그걸 우리가 결정해?"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어 자꾸만 눈치를 봤던 할아버지가 어느새 가족으로 스며들었고, 그런 그를 요양원에 보내는 게 어떻냐는 질문에 대한 옥주의 답변.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한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고, 언젠가 요양원으로 모실 지도 모를 아빠와 엄마가 생각났다.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했을 때, 나는 옥주처럼 말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고, 곁에서 매 끼니 약을 챙겨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할머니를 위한 결정이라고 우리 모두 믿어야 했다. 하지만 할머니를 위한 일이 반드시 할머니가 바라는 일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입버릇은 "이제 집에 가자"였다. 그때마다 우리는 거짓말을 했다. 삼촌이 출장 가야 하니, 돌아오면 데리러 오겠다고. 요양원에서 헤어질 때마다 마지막 씬은 똑같았다. 할머니도 우리도 같은 대사를 반복했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엄마도 아빠도 이모들도 삼촌도 모두 저 질문을 가슴이 품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기에 그 질문을 외면해야 했을 것이다. 그 선택의 무게는, 내게도 곧 찾아오겠지.
옥주의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무뚝뚝한 것도, 가끔 손에 꼽게 씩 웃는 것도 아빠 같다. 할아버지의 생일 축하 씬에서는 울컥하고 말았다. 머리가 새하얗게 될 나의 아빠가 자꾸 보여서. 자꾸만 뒷모습이 야위어 가는 나의 아빠가 금방이라도 저렇게 나이 들 것 같아서.
제일 좋았던 장면은 할아버지가 밤에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 풍경이었다. 러닝타임 내내 '할아버지', '아버지', '아빠'로만 불리는 그가 온전히 자신이 되어 멜로디를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나의 아빠가 음악을 듣고 기타를 튕기는 모습이 제일 좋다.
<남매의 여름밤>에는 두 남매가 나온다. 옥주와 동주, 아빠와 고모. 예전에는 영화를 볼 때 영화의 메인 감정선을 끌고 가는 주인공에게 몰입해서 봤는데, 나이를 곱절 먹으니 다른 세대에도 공감 거리가 보였다. 옥주와 동주는 언젠가 아빠와 고모처럼 현실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고, 아빠와 고모는 어릴 때 옥주와 동주처럼 티격태격했으리라. 투닥이다 토닥이다를 반복하는 두 남매는 그 모습 그대로 나와 남동생이었고, 일 것이다. 나도 너도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품으며 함께 살아갈 거야.
인간극장인가 싶게 자연스러운 풍경과 연기. 감독의 디테일 덕분에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일 것으로 생각했다. 각본/감독을 맡은 윤단비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자, 내가 본 첫 윤단비 감독의 영화. 단편영화에서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다고 한다. 주인공인 옥주 역의 최정운 배우, 할아버지 역의 김상동 배우가 기억에 남는다.
PS
그리고 직거래의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