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서

다시 달리면서

by 전우 호떡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개울을 만났다. 소로 옆 중앙으로 흐르는 개울에는 수해를 막기 위해 양쪽에 제방이 있었고, 제방과 제방 사이를 연결하는 서너 군데의 길이 나 있었다. 제방을 따라 논과 밭이 이어졌고, 개울의 색깔은 그대로의 빛을 잃었다. 생활용수, 논과 밭의 퇴비로 쓰인 물이 흘러들어 탁하게 물들었다. 그 길에서 촌부는 말없이 낚싯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개울 속에 물고기가 있을까? 물고기가 잡힐까?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촌부는 그런 고려 없이 거기에 묻혀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농촌의 고즈넉한 풍경, 시골의 여유로운 정서 속에서 달렸다.

뛰면서 도로 옆 인도의 흙길을 달렸고, 주위는 푸른빛으로 덮여 식물이 자라고 온천지에 풀냄새가 가득했다. 도로를 끼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이 보였다. 대부분 1층이고 어쩌다 2층도 저 멀리 보였다. 집집마다 열려 있는 대문, 집 안마당이 훤히 보이는 정경은 어릴 적 살던 시골집을 떠올리게 했다. 태양을 가리는 빽빽이 들어선 고층의 어두운 기운에서 벗어나 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대문이 없었고, 드문드문 떨어진 가옥이 몇 채 있었던 고향마을이 떠오른다.

태어나서 어릴 적에만 살다가 이사해, 고향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고, 마중물을 부어 수동으로 펌프질을 해서 물을 끌어올리는 수동식의 작두펌프를 갖고 놀았던 집의 형태 정도만 기억할 뿐이었다. 부엌 아궁이에는 항상 불이 있었고, 부엌 한편에 장작은 늘 쌓여있었다. 그런 조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요리할 수 있었는지, 불 세기를 조절하며 식사 때를 맞출 수 있었는지 도통 그려지지 않는다. 집 바깥에 재래식의 변소에 가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 역한 기운이 일어 미간이 찌푸려졌고, 독한 암모니아 냄새는 순식간에 코를 찔렀다. 나이 차가 있는 누님이 자주 업어주셨고, 방 안에 요강을 두었고, 자다가 깨면 곁에 어머니는 인기척에 금세 일어나 소변을 보도록 일러주셨다.

고향을 떠올리면 논과 밭에서 종일 일하시며 자식을 돌보셨던 할머니와 부모님의 고단한 삶이 그려진다. 자라면서, 특히 결혼하면서 열악한 고향집의 형태와 함께 오직 자식을 위해 일평생을 바친 어버이의 향수를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거칠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식들에게 기민하게 반응하시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 쉴 틈 없이 노력하셨다. 없는 살림에 양식을 마련하시느라 앉을 새 없이 늘 서서 움직이셨다. 하루하루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들이 잘 되기만을 바라며 애쓰신 어버이의 희생 위에서 우리는 따뜻하고 행복했다. 시골길을 다시 달리면서 고향을 그린다. 그곳에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이 항상 곁에 있었고, 아무 걱정이 없었다. 공간은 비어있었지만, 집안의 공기는 온정으로 따뜻했다.

시골길을 다시 달리면서 출발할 때 눈앞을 가린 숲을 지나며 탁 트인 하늘이 반갑게 나를 안아주었다. 대지를 내디딜 때마다 느낀 중력은 나를 대지와 연결했다가 놓아주며 다시 당겨주어 가볍게 앞으로 달리면서 태양이 보내는 빛을 받으며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달리면서 혼자였지만, 생동하는 따뜻한 기운 속에 몸과 마음을 채울 수 있었다. 도로 가장자리 끝에 매달려 나의 공간을 확보하며 성큼성큼 내디디며 전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시 달리면서 바라보는 시골의 정경은 어버이의 사랑과 희생의 토대 위에 이루어진 어린 시절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정서로 나를 감싸주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어린 시절의 향수 속에 어버이의 사랑과 희생의 깊이를 읽으며 옛 시절로 돌아가고, 다시 달리면서 기억과 경험 속에서 거스를 수 없는 진전이 있음을 느꼈다.

2023년 '다시 달리면서'에서
2025년 다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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